청춘 낙서 12/19/2014

by admin posted Nov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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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낙서.jpg

 

 

낙서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아마 태초부터 낙서가 있지 않았을까? 아담은 에덴동산 곳곳에서 낙서를 했을성 싶다. 고교 2학년 때. 수학여행을 가서 설악산 암벽에 새겨진 낙서에 혀를 내둘렀다. 처음 이민을 와서 ‘프리웨이’(L.A.)가 지나가는 다리 난간에 페인트 낙서가 되어있는 것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와,역시 아메리칸 아이들은 목숨을 걸고 낙서를 하는구나!” 스무살 떠꺼머리 시절, 경희대 앞 단골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벽에 낙서를 해댔다. 돌이켜보면 번민이 많았던 내 젊은 날이다.

그래서 나는 자주 되뇌인다. “청춘은 그립지만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그 나이에는 열정이 넘치는 만큼 생각과 꿈이 너무도 많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따라주질 않는다. 그래서 고뇌의 연속이다. “4년째 대학생. 4년째 노동자. 모아놓은 돈은 없음… /날고 싶다. 훨훨/답을 찾아줘!/억울하고 슬픈 일 다 지나간다. 힘내라!!” 요즈음 대학가 주점 벽에 쓰여진 낙서문구이다. 그러고 보면 세월이 지나도 청춘의 번뇌는 한결같다.

“학점, 등록금, 알바, 연애, 취업준비…” 바쁘고 피곤한 청춘은 오늘도 탈출을 꿈꾼다. 구구절절 낙서장에 밴 고뇌와 눈물은 불안한 미래에 대한 항거의 표시인지도 모른다. 낙서는 혼자만의 비밀을 고백하고 고민도 털어 놓을 수 있는 맘 좋은 친구다. 아프다며 징징대고 나면 마음도 후련해진다. 남의 낙서에서 발견한 내 고민거리가 왠지 반가운, 대학가 낙서는 그래서 젊은 날의 초상이다. 누군가 대학가 카페나 주점을 돌며 낙서를 살펴보았다. “사랑과 진로, 학업, 군대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다.

≪사랑≫ 인류가 낙서를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이 써 온 사랑 이야기. 사랑을 빼놓고서 젊은 날의 고민과 아픔을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낙서의 내용은 “왜 남친(여친)이 없어?/주위에서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나도 이성 친구를 사귀고는 싶지만 맘처럼 쉽지 않다./나의 짝을 찾아줘^^/여친~ 생기게 해 주세요/에휴 꼭 남친 만들 꺼다. 4년 안에.. /나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남자 만나고 싶다” 그러다가 만난 사랑은 녹록치 않다. “나.. 너 좋아해. 그거 알아? 몰라? 너 땜에 많이 행복하고 또 많이 힘들어…ㅠ/가을밤 잠 못 드는 사랑 준 사람, 짧게 웃고 길게 우는 사랑 준 사람/참 많이 보고 싶다”

≪진로≫ 언제부턴가 취업이 졸업을 앞 둔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자리 잡았다. “뭘해 먹고 살지? 가뜩이나 먹고 살 궁리에 골이 아픈데 취업문까지 가혹할 정도로 좁다./빨리, 좋은 곳에 취직이 됐으면 좋겠다. 열심히 나름대로 살아오고 공부한 것 같은데 왜 몇 년째 부모님께 속상함을 드리는 딸인 건지/더욱 힘내서 꼬옥 취업 성공해야겠다!!/시험 붙게 해 주세요 제발!!!!” 취직을 목표로 죽기 살기로 노력하는 친구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고민들이 의외로 넘친다.

≪학업≫ 바쁜 와중에도 절대 실패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학점관리. 올A+를 꿈꾸며 오늘도 청춘들은 달린다. ‘자전거타기, 책읽기, 신문보기’ 같은 일상생활이‘종강 후에 하고 싶은 일’ <리스트>에 올라 있다. “으아아 시험공부 하기 시러어어어어/시험아.. 우리 그만 만나/니네 기말은 안녕들 하시냐?/이번 학기 진짜 너무X3 힘들다 ㅠ ㅠ 중도휴학!!! 하고 싶지만… 죽겠지만.. 나를 스트레스 받게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끝까지 힘 내야징”

≪군대≫ 군대 자체가 고민이다. “도대체 왜, 왜, 왜! 나는 군대 가야 하는 건가? 해답 없는 질문만 마구 던지는 슬픈 우리 젊은날이여./나는 내일 군대간다. Say Goodye/영수야! 군대 잘 다녀 오구 다치지마. 잘 기다리고 있을게/현구야 선임한테 맞지 말고.. 행복해야해 ㅠ-ㅠ흑”

그렇게 청춘은 깊어간다. 내 청춘은 밤을 하얗게 새운 기억이 많다. 체력도 좋았다. 그 덕에 지금도 야행성이다. 이 나이에도 꼭 자정이 넘어야 ‘잠님’이 오신다.낙서는 ‘힐링’의 효과가 있다. ‘성취감’도 있다. 현실이 각박할수록 수준 높은 낙서를 하자. 그것이 쌓여 문학이 되는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