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배  9/20/2010

by admin posted Nov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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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린 시절부터 강가에서 살았다. 태어난 곳은 전혀 강이 없는 “포천”이지만 8살 때부터는 경기도 “양평”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남한강과 북한강을 오가며 많은 것을 가슴에 담았다. 나중에는 서울 “한강”을 바라보며 30년을 살다가 미국에 왔다. 강은 깊다. 고요하다.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면 물결이 높아지기도 하지만 강은 묵묵히 그 물줄기를 바다로 향한다. 우리는 그 강을 배로 건너야만 하였다. 뱃사공 아저씨의 노 젓는 솜씨에 경탄하면서 뱃전을 두드리는 물결소리를 벗 삼아 시원스런 강의 자태를 감상하다보면 어느새 나루에 배가 당도하였다. 배가 건너편 뭍에 가까워지면 나를 마중 나온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멋진 경찰복을 입으시고 자전거 옆에 당당히 서서 나를 기다리셨다.

그런데 때로는 손님을 배로 떠나보내야 하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같이 있을 줄 알았던 사람이 집으로 돌아가는 때가 되면 우리는 나룻 터까지 환송을 나갔다. 나는 어릴 때부터 정이 많았던 것 같다. 이별이 서러워 눈물짓는 나를 안아주고 떠나가는 그 사람을 향해 배가 저만치 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떠나가는 배는 언제나 서글픔을 안겨주고 갔다. 이번 주간 갑자기 “떠나가는 배”의 아련함을 기억해 냈다. 잘 알지 못하지만 유명한 한분과 너무나 잘 알지만 자주 만나지 못했던 한분을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전자는 “옥한흠 목사님”(사랑의 교회 원로)이다. 한국에서 옥 목사님을 직접 만난 것은 “목회자 세미나”가 전부였다. 오히려 목사님이 쓰신 책과 영상을 통해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한국에서 목회를 할 때에 만난 그분의 저서 “고통에는 뜻이 있다”는 갈급한 시점에서 만난 시원한 한줄기의 생수였다.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영상설교를 들으며 얼마나 큰 위로와 도전을 받았는지 모른다. 날카롭지만 여린 마음을 가지신 목회자, 한국교회에 “제자훈련”의 초석을 쌓은 분. 2년 전 필라 “복음화 대성회”에 강사로 오셨을 때 악수를 나누고 그분의 체취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건강이 악화되셨다’는 소식에 안타까웠는데 끝내 일어나지 못하시고 73세를 일기로 떠나가는 배에 오르셨다.

또 한분, 평생을 교사로 후학들을 양성하시다가 은퇴를 하신 후 따님을 사랑해서 필라델피아에 오셔서 사셨던 분. 밀알선교단을 사랑하셔서 매주 장애인들을 찾아와 친구가 되어 주시던 분. 우리는 평생 교직에 몸담은 그분을 “홍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그분에게는 뇌성마비 중증 장애를 가진 아들이 있다. 5년 전에는 아들을 미국으로 불렀지만 적응이 어려워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홍 선생님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시며 그 아들에게 사랑을 쏟았다. 몸이 쇠약 해 지시며 밀알선교단에도 나오지 못하시게 되었고 지병과 싸워야 하는 힘겨운 생을 이어가야 했다. 지난 주간,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님이 많이 위독하시다”는 전갈이었다. 달려가 만난 홍 선생님은 혼미한 중에도 나를 알아보고 미소를 지어주셨다.

많이 미안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뵙지 못한 사실 때문이었다. 예배를 드리고 “예수님 영접”을 확인하고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어머니가 위독하시다”는 소식을 듣고 장애를 가진 아들은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고 하였다. 목회를 하면서 깨닫는 것은 사람은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이다. 아무리 위독해도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운명하지 않는 광경을 많이 목격했다. “석이가 오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으실 겁니다.” 위로 겸 확신에 찬 한마디를 남기고 병원 문을 나섰다.

그 말대로 한국에서 날아온 아들의 얼굴을 보고서야 그분은 명줄을 놓으셨다. 9월 첫날 새벽이었다. 향년 77세로 홍 선생님도 떠나가는 배에 오르셨다. 두 분 다 더 사실수도 있는 연세였는데 너무도 서둘러 배에 오르신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관 속에 가지런히 눈을 감고 누워있는 홍 선생님을 향해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우리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마지막 관이 땅속으로 들어가려는 그 순간, 휠체어에 앉아있던 아들은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어머니의 관을 향해 아들은 흰 장갑을 낀 손을 좌우로 저었다. 마치 내가 어린 시절 떠나가는 배를 향해 손을 저었을 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