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통 사람들 9/2/2011

by admin posted Nov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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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의 매력은 재래시장에 있다. 백화점이 동네를 점령하면서 편리한 생활이 보장 된 것은 사실이지만 역시 재래시장에 가야 사람냄새를 맡을 수 있다. 미국에 살면서 항상 그리운 것은 재래시장의 정겨움이다. 시장 한구석에 퍼질러 앉아 순대와 오뎅을 먹다가 매운 떡볶기 한 조각을 곁들이면 살아있는 것이 실감나서 좋았다. 서울에는 나름대로 개성을 가진 시장이 즐비하다. 지금은 그 자취를 감춘 지 오래지만 황학동 ‘도깨비 시장’에 들르면 희한한 물건들이 넘쳐흘렀다. 한참을 둘러보고 청계천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볼거리가 즐비했다. 뱀 장사의 입담에 웃음 짓고, 못 보던 약판을 벌여놓고 소리치는 약장사의 꾀임에 넘어갈 뻔도 하며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나면 가슴이 시원해졌다.

시장통은 인생의 단면도를 보는 것만 같다. 시장상인들의 특징은 억척스러움이다. 새벽에 시장상가의 문이 열리면 정신없이 하루를 돌아친다. 그렇게 인생도 바쁘게 살다보면 마감의 순간이 다가오는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늘도 분주하게 그러면서 성실하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삶의 톱니바퀴를 이어가고 있다. 다양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곳이 시장통이다. 시장통 사람들은 오늘도 눈을 뜨면 시장에 나가 가게 문을 열어제낀다. 끼니는 식은 밥에 나물을 비벼 먹을 때가 많다. 때로는 부러 터진 라면에 김치를 올려 끼니를 때우기도 한다. 그러다가 가게에 들어선 손님을 맞이하느라 일어나기 편한 몸뻬를 입고 살아온 지도 반평생이 넘은 분들이 많기도 많다. 거친 물건들을 수십년 만지다보니 하루라도 물기 마를 날 없는 손마디엔 주름이 가득하다. 비린내 나는 생선 가게 아줌마와 젓갈 할머니의 손이 인상적이다.

언제나 새벽 별을 머리에 이고 왔다가 언제나 마지막 버스를 타고 가는 시장통 사람들. 파 와 마늘을 다듬어 상품을 만들고 고추 매듭을 따는 손길이 능숙하다. 해마다 명절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서둘러 고향으로 향하지만 ‘명절대목’에 정성을 쏟다보니 시집온 이후 시장통에서 보낸 세월이 반백이 되었다고 탄식하는 할머니의 넋두리가 정겹다. 그래도 그렇게 고생한 끝에 아이들 번듯하게 대학 물 먹이고 아파트 얻어 남부럽지 않을 만큼 살아가는 것이 고맙기 그지없단다. 속절없이 흘러 가버린 젊은 날의 뒤안길.

이제는 영감 허리춤을 붙잡고 세상구경이라도 하련만 자고 일어나면 북새통을 이루는 삶의 터전이 오늘도 분주하다. 그렇게 시장판에서 상가 사람들과 정을 주고 받다보니 세월은 머리에 흰 가루를 뿌렸고 어제도 오늘도 청춘과 애환을 비벼 바치는 시장이 너무도 사랑스럽단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은 시장통 사람들은 부지런히 움직인다. 자꾸만 “사라.”고 한다. ‘싸구려 싸구려’ 소리를 치며 “사라”고 한다. “가요, 가요, 짐요, 짐요.” 빈 수레를 끌고 가며 연신 소리를 지른다. 여기저기 쓰러진 삶의 잔재들이 아무렇게나 밟히는 시장통. 어디선가 “된 놈 안된 놈” 언성 높여 싸우는 소리. 누가 또 삶의 밥그릇을 밟았나 보다. 눈 을 부라리며 연신 삿대질 해가며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시장통 광경.

나이가 들어가며 기력이 쇠하여 진때에 아들이 가게로 돌아왔다. 대학을 나오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아들이 ‘명퇴’를 당하며 시장통 사람이 된 것이다. ‘내 비록 시장통에서 억세게 살아왔지만 아들만은 그 고생 안 시키려고 했건만’ 인생이 어찌 사람 뜻대로 된다던가? 아들이 가업을 이어 제법 상인 흉내를 내는 것을 보면 안쓰럽다가도 대견하고 이제는 든든한 마음까지 든다. 어차피 한세상을 살아가는 것. 꼭 화이트칼라에 넥타이를 매고 살아야 잘 사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함께 시장통에 나온 며느리의 장사솜씨가 야물어(호남 사투리: ‘알차다’는 뜻) 그것 또한 신통하기 이를 데 없다.

그렇게 오늘도 시장통의 밤이 깊어간다. 그렇게 오늘도 지구촌 시장의 어두움이 깔린다. 물건을 파는 사람은 팔면서 신이 나고 필요한 물건을 흥정 끝에 얻고 나면 성취감에 즐거워하는 곳. 시장통 사람들은 그런 재미를 놓지 못해 새벽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시장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