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좋사오니

by 관리자 posted Sep 3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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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안정된 환경과 분위기를 원한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랬다. 예수님과 변화산(헬몬산)에 올라 예수님의 형상이 변화하고 황홀경을 경험하며 베드로는 외쳤다. “주님, 여기가 좋사오니!” 그 고백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욕구인지도 모른다. 나는 고교시절. 평생 잊지 못할 영화 한편을 보았다.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들”이었다. 당시 최고 인기 소설가인 “박계영”씨의 작품을 극화한 영화는 아직도 내 뇌리에 수채화처럼 남아있다. 그 제목이 얼마나 인상적인가?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머무르고 싶은 순간이 있다. 아니, 시간이 아예 멈춰지기를 바랄정도의 행복한 시간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살아야 할 우리들이 낯선 땅 미국에 살기까지 저마다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을까? 미국에 오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날들을 밤잠을 설치며 고심했던가? 나도 그랬다. 서울에서 안정적인 목회를 하고 있던 나를 흔든 것은 대학동창 친구 목사였다. 오래전 L.A.(로스엔젤레스)로 이민을 와서 건실한 목회를 하고 있던 친구는 한국에 올 때마다 나를 유혹(?)했다. “한인들이 많은 L.A.에서 ‘장애인사역’을 펼쳐보라. 정작 장애인단체장중에 장애를 가진 분이 드문 상황에서 이 목사가 적격이다.” 일반목회만 해온 나에게 장애인 사역은 낯설게 느껴졌고, 나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기에 건성으로 응대를 했다.

 

 하지만 매년 다그쳐오는 친구의 말에 어느 순간부터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침 집회가 잡혀 처음으로 미국 땅을 밟은 나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넌지시 이민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대답은 실로 다양했다. 그러다가 만난 한분이 던진 한마디에 결심을 굳히게 된다. “목사님, 올까말까 하다가는 절대 못 옵니다. 그냥 결단하셔야 합니다.” 그랬다. 인생은 어차피 모험이 아니던가? 무엇보다 목사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라면 어디는 못가랴! 그때처럼 기도를 많이 했던 때도 없었다.

 

 앞만 보면 달려온 내게 L.A.는 안식을 주었다. 한국의 추석에나 만날법한 청명한 날씨. 습도가 전혀 없어 상쾌함을 느끼게 해주는 천혜의 환경. 아마 내 생애에 가장 근심 걱정 없이 지낸 시간으로 기억된다. 친구 목사는 일단 나에게 청년부를 맡겼다. 타이틀은 ‘선교목사’였고, 추이를 지켜보며 장애인사역을 전개하기로 하였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며 내 맘속에 “여기가 좋사오니” 본성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허물없는 친구와 팀 목회를 하며 그 자리에 머물고 싶었다. 막상 타국에서 ‘장애인사역’을 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근본자체를 흔들기 시작하셨다. 친구와의 25년 우정에 금이 가면서 예상치 못했던 갈등과 시련이 나를 못 견디게 하였다. 가까스로 “남가주 밀알선교단”에 involve 되면서 장애인사역에 첫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그렇게 L.A.에서 영원히 살줄 알았다. 갑자기 세계밀알 본부로부터 “필라델피아 밀알 단장으로 가라.”는 발령이 떨어진다. 필라델피아? 미국지도를 펼쳐놓고 들여다보니 뉴욕 밑에 자그마하게 쓰여 진 다섯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나는 또다시 미주 동부로 이주를 해야만 했다.

 

 당시 필라 밀알 사역은 맨땅에 헤딩이었고, 공수특전단 투하였다. 모든 것이 열악, 그 자체였다. 업무 인수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주일마다 교회를 찾아가고, 사람들을 만나며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새 그 세월이 15년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임을 깨닫는다. 성경은 말한다. “사람이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여호와시니라!”(잠언 16:9)

 

 인생길에서 가장 위험한때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순간이다. 이웃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많은 돈을 모아놓고 쉬려고 하거나 모든 것에서 손을 놓으려 할 때에 변을 당하고 만다. 나이와 환경을 초월하여 날마다 꿈을 꾸고 행동하려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에너지를 주시고 귀하게 사용하신다. “밤 깊도록 동산 안에 주와 함께 있으려 하나 괴론 세상에 할일 많아서 날 가라 명하신다.” 찬송가 가사가 가슴을 파고드는 가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