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은 소중하다. 천지창조 시 하나님은 교회보다 가정을 먼저 만드셨다. 그 속에는 가정이 첫 교회라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 하나님은 가정을 통해 참교회의 모습을 계시하셨고 파라다이스를 경험하게 하셨다.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신 후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다”고 말씀하신 후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드신다. 아내와의 첫 만남에서 아담은 이렇게 외친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세상에 이렇게 완벽하고 아름다운 시가 있을까?
사랑은 사람을 시인이 되게 한다. 깨어나게 하고 꿈을 꾸게 만든다. 사랑은 봄에 피어나는 아지랭이처럼 사람을 나른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랑을 하면 예뻐진다. 인간의 사랑은 처음엔 다 그렇게 달콤하게 시작된다. 어떤 자매가 연극구경을 갔다. 그런데 옆에 앉아 있던 남자가 팸플릿을 떨어뜨렸다. 주워준다고 손을 내어미는데 그 남자도 주우려고 손을 내렸다. 자연히 서로 손이 닿을 수밖에. 그때 몇 만 볼트의 전기(?)가 둘의 손을 관통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났고, 결혼을 했다.
대학시절 유도를 하던 형제가 있었다. 어느 날 시합에 나가 우승을 했다. 얼마나 좋았을까? 청년은 누나에게 전화를 했다. 상대가 나오자마자 청년은 소리를 지르며 우승소식을 전했다. 박진감 넘쳤던 경기 내용까지 설명 해 가며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한참 후에 상대가 말한다. “저… 전화를 잘못하신 것 같은데요” 이 청년은 너무 흥분해서 전화 다이얼을 잘못 돌린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이런 인연으로 둘의 교제가 시작되었고, 부부가 되었다.
부부가 처음 만난 사연을 들어보면 참 재미있고도 오묘하다. 그런 판타지가 지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담과 하와를 보라! 그렇게 멋있게 만났는데 어느 순간 서로를 원망하며 에덴동산을 떠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처음 남녀가 만났을 때는 그렇게 아름다웠건만 결혼을 하고 나면 환상이 깨지고 상처투성이가 된다. 그래서 어느 철학자는 말했던가? “결혼은 사랑의 무덤이라”고. 사람들은 결혼을 신랑 신부 두 사람이 하는 줄 안다. 아니다. 결혼은 6명이 함께 사는 것임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럼 4 사람은 누굴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양가 부모가 내 속에 들어와 있다. 결혼 전까지 그분들에게서 답습한 습관과 관념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아내가 좋은 아버지를 만나 성장했다면 보약을 먹고 자라는 것과 같다. 반대로 아버지가 아버지답지 못했다고 하자. 그 자매는 남자에 대한 상처를 안고 결혼을 하게 된다.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아들은 큰 재산을 소유한 사람과 같다. 반대로 어머니에게 상처를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그 상처를 그대로 안은 채 결혼생활을 하게 된다. 분명히 살기는 두 사람이 사는 것 같지만 시시각각 만나는 사건을 통해 6 사람이 뒤엉키며 가정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좋은 부모 밑에서 성장한 것은 행운이지만 기대치가 높기에 상대를 힘들게 할 수도 있다. 아내는 아내일 뿐 내 어머니가 아니다. 그럼에도 남편은 아내에게서 어머니의 좋은 점을 찾으려 한다. 남편은 남편일 뿐 내 아버지가 아니다. 그럼에도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남편을 힘들게 하는 자매들이 많다. 그래도 그것은 다행스러운 이야기다. 상처를 가지고 만난 부부는 시시각각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가 튀어나와 극으로 치닫기 쉽다. 아버지에게는 대들지 못했다. 어머니에게도 한마디 못했다. 그러나 부부는 만만하다. 부부 싸움을 깊이 분석 해 보면 아내(남편)와 싸우는 게 아니다. 어릴 때부터 상처를 준 어머니(아버지)와 싸우는 것이다. 상처가 이렇게 무섭다
나는 한국에서 목회와 더불어 가정사역을 했다. 깨달은 것은 부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만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르다는 것, 자라온 환경이 극명하게 갈린다는 것만 알아도 상대방을 보는 눈이 열릴 수 있다. 처음 만났을때에 그 짜릿함보다 세월의 흐름 속에 상대를 품을 수 있는 가슴을 가지는 것. 그것을 사랑이라고 하며 가정 행복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