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용

by 관리자 posted Nov 2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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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회용품.jpg

 

 

  바야흐로 1회용품이 상용화된 시대이다. 컵부터 시작하여 세면용품, 밴드, 도시락, 가운, 렌즈, 면도기, 카메라, 기저귀, 주사기, 다양한 모양의 그릇까지 요즘에는 일회용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없다. 실로 1회용품 홍수시대이다. 1회용품 중에는 한번 쓰고 버리기에 아까울 정도로 고급화된 상품들이 눈에 띈다. 편리하고 간편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1회용이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다. 해서 1회가 아니라 오래도록 사용할 때가 많은 것은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체질 때문인 것 같다.

 

  그런 세태여서일까? 인간관계도 1회용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진지함, , 사랑, 끈끈함이 없다. 그냥 필요할 때 만나고 도움을 받고 난 후에는 나 몰라라하는 것이다. 이제는 심지어 일회용 친구, 일회용 애인도 생겨났다. 대행업체가 생겨서 결혼식장에 신랑이나 신부의 친구로 서주는 일회용 친구, 외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주는 일회용 애인이 그들이다. 서글프다. 이렇게 일회용에 익숙해지다 보면 책임의식이나 삶의 가치관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오래전 일이다. 차를 사기 위해 한국 딜러를 찾았다. 같은 한국 사람이라는 편안함 때문이었다. 차를 살 때까지는 친절하기 그지없었다. 얼마 후 차에 문제가 생겨 찾았을때에 그는 냉랭해져 있었다. 아주 귀찮은 표정이었다. 이후로는 절대 그를 찾아가지 않는다. 1회용 물품을 사용하듯 관계를 1회용으로 하는 사람을 보면 미운 것을 넘어 측은해 보인다. 사회학자들은 한사람 뒤에는 36명이 있다.”고 한다. 내 눈에는 한사람이지만 그 뒤에는 가족이 있고 그와 만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결국 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름다우면 내 삶 자체가 풍요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돌아보면 인생 자체가 1회이다. 바둑과 장기는 한번 지고 나면 한판 더 두면 된다. 하지만 인생은 단 한판이다.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 신나게 놀고 즐기며 살자그런 얄팍한 생각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이 있다. 고귀한 인생을 값싼 일회용으로 살려고 하는 부류이다. 젊을 때는 그 젊음이 영원히 계속될 것 같지만 세월의 흐름이 숫자를 더하며 나를 노년으로 소리없이 인도한다. 그리고는 돌이킬 수 없는 시점에 다다르고 만다. 한번 사용된 1회용품은 파기되어 사라지듯 내 인생 여정이 끝나고 나면 나는 본향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지 만날 수 있으며 입맛을 당기는 음식을 찾아 어느 식당이든 갈 수 있을지 알았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번지면서 너무도 평범하던 일은 기적처럼 멀어져 가고 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렵고 집을 나선다는 것 자체가 모험이고, 여행은 먼 나라에 동화가 되어가고 어렵사리 식당을 찾아 음식을 먹으면서도 왕성하던 식욕이 발동하지 않는다. 이제야 깨닫는다. 평범이 기적이었음을. 마스크 없이 사람들을 만나고 차를 몰고 미지의 땅을 질주하고 비행기를 타고 먼 곳에 가고 싶지만 현실은 너무도 막막하다. 조금 더 성실하지 못했던 것과 진지하게 삶을 살지 못함에 대한 회한이 밀려온다.

 

  물품만 1회가 아니다, 내 인생도 1회이다. 윤회설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고도의 로망일 뿐이다. 오랜 여행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두 것을 다 쓰고 가듯이 우리 인생도 이 땅을 살아가는 동안 모든 것을 소진하고 떠나야 한다. 인스턴트란 눈의 깜박임’(Blink of eyes)에서 유래하는 순간’(Augenblick)을 의미한다. 그만큼 흐름이 빨라지고 변화무쌍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 1회용을 현대인들은 그래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영향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도 일회적이고 인스턴트화 되어 가고 있다. 비극이다.

 

 그 누구라도 오랜 친구처럼, 평생 함께 갈 존재로 여기고 오늘, 지금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1회로 끝나는 인생이라 할지라도 가치를 존귀하게 부여하는 방법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이 생명의 기회를 일회용 사용하듯 가볍게 소모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