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당사자도 고통스럽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사는 가족들의 아픔은 말로 표현이 안된다. 우연히 마트에서 손에 약봉지를 든 지인과 마주쳤다. “누가 아파요?” “제 아내가 루게릭병으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항상 밝은 모습만 보이던 분이라 당황스러웠다. 나의 아버지는 한창 좋은 나이 50대 중반에 중병을 얻어 아랫목에 몸져누우셨다. 20대 청춘은 집에 들어가는 것조차 버거웠다. 병세가 위중해지며 점점 야위어가는 아버지를 바라보는 아들의 마음은 쓰리고 아팠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 중에 건강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잠도 좁은 방에서 다 같이 자야 하지만 나는 웃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으니까요.” 뇌병변 장애1급으로 누워있는 아버지, 힘든 간병생활로 얻은 허리 디스크, 자궁근종, 고혈압, 우울증 등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인 어머니, 근육이 점점 약해지는 근이영양증의 큰딸, 유전병인 탓에 근이영양증이 의심되는 두 여동생. 다섯 명의 식구가 제각기 하나 이상의 병을 앓고 있는 이 가정은 내년이면 고3이 되는 문지연(17) 양의 가족이다.
아버지가 사고를 당하기 전만 해도 다섯 식구는 남부럽지 않은 유복한 가정이었다. 등산을 좋아했던 아버지 문상영(50) 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산에 올랐고 뜻하지 않은 추락사고로 병원신세를 지게 되면서 이 가정의 불행은 시작되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병원비를 대느라 모든 재산을 정리해야 했고 집도 없이 딸들과 살 곳마저 막막하던 때에 구청에서 마련해준 10평 남짓한 공간에 보금자리를 틀고, 정부보조금으로 살아가게 된 것이다.
“솔직히 남편만 하늘나라 가면 내가 애들 데리고 무슨 짓을 해서라도 살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근데 진짜 좋은 남편이었어요. 15년 동안 나한테 잘해줬는데 5년 동안 고생하는 거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지도 못한 사고로 남편이 눕게 된 후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지는 심정으로 살던 어머니 유정록(48)씨는 그나마 세 딸을 보며 힘을 내어 살았지만 그것도 잠시, 큰딸 지연이가 자꾸 다리에 힘이 풀리고 넘어지자 이상해서 검사를 했고, ‘지대성 근이영양증’이라는 근육병을 진단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유전병인 탓에 다른 두 딸도 같은 증상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아 정밀검사를 앞두고 있다. 아직 본격적인 증상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언제 휠체어에 앉게 될지 모르는 상황.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어머니는 좌절했지만 세 딸들은 더 힘을 내었다.
그 와중에 지연은 스스로 집안일을 돕고, 하루종일 누워있는 아버지의 말벗이 되어주며 간병을 도왔다. 게다가 어려운 형편에도 불편한 다리로 피자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배달과 서빙 일을 했지만 다리에 힘이 없어 자꾸 넘어지자 사장의 배려로 비교적 움직임이 적은 주방 일을 하고 있다. 건강한 사람도 하기 힘든 일을 하는 지연이를 생각하면 어머니의 마음은 미어진다. “아버지와 같은 장애인들이 살기에 불편하지 않은 집을 만들고 싶어요.” 현대판 효녀심청, 지연이는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꿈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형편은 아니지만 꿈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아버지를 향한 사랑 때문이다. 지연이는 반드시 아버지를 위해 꿈을 이루겠다는 결심으로 오늘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좁은 방 한 칸에서 공부도 하고, 다섯 식구가 모여 잠도 자야 하는 불편한 일상이지만 가족이 함께 할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지연이네 가족. 그러나 내년 봄이면 이 계약도 만료가 되어 집을 비워줘야 한다. 지연이네 가족은 다가오는 겨울이 두렵기 그지없다. 지연이는 아빠에게 다가가 말한다. “아빠 죽지마, 지연이가 멋진 집 지어줄게” 다들 병마와 싸우고 있지만 가족이 사랑으로 엃혀있기에 아파도 그들은 행복하다. 가족의 끈끈한 사랑으로 모든 병마를 이기고 꿈을 이루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