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평생 그렇게 바쁘게 돌아치며 살고 있을까? 분명히 뭔가 잡으려고 그렇게 달려가는데 나중에는 ‘허무’라는 종착역에 다다르게 되는 것일까? 세상의 모든 것을 원 없이 누렸던 솔로몬은 유언처럼 남긴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외치며 생을 마감한다.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로 시작하여 D(death)로 끝나는 것”이라고 했다. 탄생(birth)은 신비하고 경이로운 과정이다. 성경 신약 마태복음은 그 생명의 역사를 이렇게 기록한다. “낳고, 낳고, 또 낳고…” birth가 없으면 story 형성이 안 된다. 인류의 역사를 한마디로 축약하면 “낳고, 살고, 죽는다.” 일 것이다.
살아갈 때는 길게만 느껴진다. 나이가 들어 뒤를 돌아보면 짧은 것이 인생이다. B와 D 사이는 그 과정이 복잡미묘하다. B가 제대로 되어야 삶이 순탄하다.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인생이 늘어나고 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엄마, 아빠 없이 살아온 사람은 얼마나 힘들까?” 핏덩이로 태어나 부모들의 정성 어린 보살핌 속에 아가는 성장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버려진 듯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불신, 의심, 부정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산다. 그 쓴 뿌리는 결국 알코올을 의지하게 만들고 분노조절을 하지 못해 폭력 성향의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사람이 결혼을 하면 가정의 분위기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다.
영화 <굿윌헌팅>의 결정적인 대사가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It is not your fault!) 천재 굿윌은 고아다. 그에게는 가족이 없다. 천재도 우리가 아는 정도가 아닌 최상위의 천재이다. 역사, 법학, 수학 등에 지식이 엄청나다. 어릴 때 입양되지만 두 번이나 파양을 당하고 의붓 아버지로부터 학대를 당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반항적인 삶을 살아간다. 마음을 열지 못하고 깊은 어둠의 상태에 갇혀 지내는 것이다. 그의 천재성을 발견한 램보 교수는 친구 숀 교수에게 치유를 맡긴다. 하지만 좀처럼 윌은 마음을 열지 않고 곁길로만 나아간다. 그 비뚤어진 청년을 향해 숀 교수는 작정하고 외친다. “It is not your fault!” 처음에는 거세게 저항하던 윌이 자신의 눈을 똑바로 보고 열 번이나 반복해 이야기하는 숀에게 눈물을 흘리며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처음 영화를 보며 한없이 울었다. 내가 장애를 가진 것은 내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직도 어린 시절의 상처로 허덕이며 살고 있는 분이 있다면 나는 외치고 싶다. “It is not your fault!” D(death)를 향해가는 도중에 숱한 C(choice)를 만난다. 다행이다. 죽음만을 바라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은 다행히 인간에게 B와 D사이에 C(choice)를 허락해 주셨다. 사람은 눈을 감는 순간까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선택하며 살아야 한다. C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절대절명의 선물이다. C가 생략되고 바로 D를 맞이해야 한다면 우리는 얼마나 삭막하게 살아야 할까? 다행히 모든 사람에게 C(choice)가 주어진다. 중요한 것은 C를 다른 C(chance)로 만들어 자신의 삶을 또 다른 C(change)로 바꾸어야 한다.
인생은 선택을 통하여 기회를 만들고 잘 살려서 인생을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귀중한 인생의 C를 버리고 D를 택하고 마는 안타까운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자살은 하나님께 뿐만 아니라 옳은 선택을 기대하는 모든 사람에 대한 죄악이다.
인생은 D(death)에서 끝난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B)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죽음(D)을 향해 달려간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정해진 방법도 없다. 그것을 모르는 것이 답답하지만 행운일 수 있다. 내가 죽는 날을 알고 산다면 인생은 평생 세월을 세며 불안함에 떨다가 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이 B(birth)로 시작하여 D(death)로 끝난다 할지라도 그 사이에 C가 있기에 반전을 기대할 수 있다. 오늘도 외치자. “좋은 일이 일어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