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위대한 것은 어떤 장벽도 넘어설 수 있음을 꿈꾸며 도전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가 있다. 불가능한 일은 아예 엄두도 내지 말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환경을 탓하며 주저앉는다. 하지만 “하면 된다”는 신념을 가지고 현실 앞에 도전하는 사람은 그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는다. 따라서 도전하는 인생은 아름답다. 사실 성공한 사람은 처음부터가 아니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한 열매를 거둔 것이라 할 수 있다.
장애를 가지고 자라면서 들을때마다 섬찟했던 말은 “×× 육갑한다”는 말이었다. 뭔가 시도하려고 하면 그 말이 무겁게 나를 눌러왔다. 그래서 중학교 때 친구가 “웅변을 함께하자”고 권할때에 “내가 어떻게?”라며 처음에는 거절을 했다. 절뚝거리며 단에 오르는 모습부터 기우뚱하게 서서 웅변을 하는 나를 사람들이 조롱할까봐 두려웠던 것이다. 끈질긴 친구 덕에 웅변을 시작했고 친구와 콤비를 이루며 각종 대회를 휩쓸고 다녔다. 그것이 어린 나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수천명의 성도들 앞에서 전혀 흔들림없이 설교할 수 있는 담력은 그래서 생겨났다. 세월이 지난 지금 그 사실이 너무도 감사하다.
모델하면 우리는 일단 완벽한 몸매를 생각한다. 균형잡힌 신체, 자그마한 얼굴, 무엇보다 늘씬한 각선미가 모델의 상징이다. 그런데 모델을 지망하는 이 여성은 다리가 없다. 치명적인 신체적 장애를 넘어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 여성에게 사람들은 아낌없는 응원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구랍 12월. 중국 장쑤성에서 열린 치파오 모델 대회에서 무대로 걸어 나오는 여성은 오른쪽 다리가 없다. 목발을 짚고 걷지만, 누구보다 당당해 아름답다. 바로 “구이와나”이다.
1984년생인 위나의 삶은 평탄하지 않았다. 태어나기 전 아버지가 이미 돌아가셨다.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일곱 살 때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트럭에 치여 오른쪽 다리를 잃고 말았다. 좌절한 그에게 큰 힘이 되어준 두 여성이 있었다. 어머니는 계속 용기를 불어넣었고 이웃에 살던 마음씨 좋은 30대 여성은 2년 동안이나 위나를 등에 업고 등하교를 도와 줄 뿐 아니라 함께 놀아주면서 격려해 주었다. 2001년 전국장애인체전에서 구이위나는 광시성 대표로 멀리뛰기 선수로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 당시 그녀는 “지금 너무 설레요. 제 모든 노력이 헛되지 않았습니다.”라는 소감을 들려주었다.
20살이던 2004년엔 아테네 패럴림픽 국가대표가 됐고, 4년 뒤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로 선정되어 달리기도 하였다. 올림픽 멀리뛰기 부문에서 세계 4위에 올랐고, 높이뛰기 부문 세계기록도 보유하고 있다. 그녀의 도전은 계속된다. 한쪽 다리로 권투를 배우는가 하면 헬스장에서 일반인들과 어우러져 운동을 한다. 네티즌들은 도전하는 구이위나를 향해 “용기를 얻는다”며 열띤 응원을 보내고 있다.
“사람들이 저를 처음 보면 '너무 불쌍하다, 삶이 참 불행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에겐 그런 동정은 전혀 필요 없습니다. 나는 비록 다리가 하나지만 그 누구보다 더 자주 집 문을 나서고 또 전국 각지를 누비며, 심지어 해외에도 나가는 등 인생을 풍부하고 알차게 보내고 있습니다” 결국 그녀는 구랍 12월 30일. 장쑤성 화이안에서 열린 국제 올림피아드의 밤 건강미 경연에서 청나라 시대 여성 의상인 치파오(旗袍) 부문 1위를 차지했다. 그녀는 한쪽 다리가 없어 지팡이를 짚고 참가했지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밝고 당당하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다.
환경, 건강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삶을 진취적으로 사는 것이리라. 몇 년전 밀알사랑의 캠프에서 휠체어를 탄 자매가 무대에 올라 ‘휠체어 댄스’를 선보였다. 감동이었다. 중도장애인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었던 그분의 밝은 표정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도전, 긍정마인드, 할수있다는 적극적인 삶의 자세- 그것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