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의 안내 음성이 들리지 않아 버스를 잘못 탄 적이 있습니다. 민원에 따라 소리를 줄이면 시각장애인인 저는 출근을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서울시에 거주하는 제모(32세· 시각1급)씨는 2년 전부터 출근길이 불안하기만 하다. 버스가 도착 시 제공하는 ‘정류장의 안내 음성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우려에서다. 제모씨가 이러한 불안감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14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소처럼 출근을 하기 위해 강남 세곡중 · 세명초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제모씨는 평소처럼 들려야 할 버스 도착 안내음성이 잘 안들려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알고보니 인근 아파트 주민이 버스정류장의 음성안내 소리가 크다면서 민원을 제기했고, 시청에서 버스정류장의 안내음성 소리를 줄인 것이었다.
사람들 참 아멸차다. 자신의 두눈이 멀쩡하다고 전혀 눈을 볼수 없는 장애인들의 아픔을 외면하니 말이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이 있다. 그중에서도 시력은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의술이 좋아져서 백내장 수술을 통해 노년 시력장애를 잘 넘어가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다. 20대 유년부 전도사 시절. 시각장애인에 대한 설교를 하다가 갑자기 “모두 눈을 감으라”고 하였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참지 못하고 실눈을 뜨는 아이가 생겨났다. 한참이 지난 후 “눈을 떠도 좋다”는 말에 엄청난 해방감을 맞이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몸이 백냥이면 눈은 90냥’이라 했던가? 시력은 삶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의외로 시각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 우리 밀알선교단에도 몇몇분이 시각을 상실하며 어려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중도 실명은 선천적인 경우보다 충격이 더 크다. 시력이 사라지며 불신은 늘어나고 신경이 예민해져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다. 상상을 해 보라! 멀쩡하던 눈이 어느날부터 흐릿해지고 볼 수 없게 된다면 얼마나 답답하고 괴롭겠는가? 한국에서 목회를 할 때에 장로 한분이 당뇨가 너무 심했다. 결국 시력에도 문제가 생겼다. 어느날, 심방을 갔더니 커다란 돋보기를 들고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안스러운 마음이 번져왔다. 보고는 싶은데 볼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것인지를 그 분을 보며 실감했다.
선천적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질병 또는 외상으로 인해 실명하는 경우도 많다. 그것도 30세 이전에 말이다. 정상적인 시력을 가지고도 살아가기 힘든 현실에서 시각장애는 치명적인 커다란 벽이다. 그럼에도 시각장애의 난관을 넘어서며 인류에게 귀한 족적을 남긴 사람들이 있다. 호메로스(Homeros, BC 8C경)는 그리스의 서사시인이다. 대서사시 ‘일리아스(the Iliad)’와 ‘오딧세이아(the Odyssey)’의 작가로 유명한 서구문학의 시조이며, 그리스 최대의 시성으로 평가된다. 그의 생애와 실체에 관해서는 신비에 싸여있지만 그는 소아시아 출생으로 시각장애인이었다.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은 영국출신으로 세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시인이자 비평가였다. 지나친 격무로 43세에 실명한 후 59세에 그의 역작인 대서사시 ‘실락원’을 출간하였다.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는 스위스의 세계적인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다. 심한 열병을 앓은 뒤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고 이후 왼쪽 눈도 백내장으로 시력장애를 겪었지만 강인한 정신력과 천부적인 기억력으로 수학을 체계적으로 집성하는 업적을 남겼다.
헬렌켈러(Helen Keller, 1880~1968)는 생후 19개월에 열병을 앓아 볼 수도,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는 삼중고의 장애를 안아야 했다. 하지만 그녀는 세계적인 작가이자 사회사업가, 강연자로 이름을 떨쳤다.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고 외쳤다. 비록 시각을 상실하여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 수 있도록 힘을 주고 붙들어주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