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가볍다는 말은 없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흐를수록 생의 무게는 버겁기 그지없다. 어린 시절에는 모든 것이 마냥 즐거웠다. 어쩌다 먹는 짜장면, 별것도 아닌 음식이 우리를 흥분시켰고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은 항상 정겨웠다. 저녁을 든든히 먹은 후 운동화 끈을 질끈 동여매고 동네 마당으로 나가면 웬지모를 설레임이 가슴에 밀려왔다. TV도, 흥미를 유발할 변변한 도구도 없던 그 시절에는 자연이 우리의 품이었다. 달이 밝은 때는 달빛을 벗 삼아,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는 캄캄함을 받아들이며 다채로운 놀이를 즐겼다. 어깨동무를 하고 온 동네를 돌며 아이들을 모으고, 남녀 구별없이 스스럼없이 어우러지던 그 시절이 내어밀면 손에 잡힐듯하다.
나는 경찰 아버지를 둔 이유 하나로 초등학교를 5곳이나 옮겨 다녔다. 정들면 헤어지던 그런 환경 속에서도 가슴의 정겨움을 잃지 않은 것은 항상 나무와 들과 산을 쏘다니며 뒹굴었던 덕분인 것 같다. 세월의 흐름 속에 사람은 언젠가, 어디에서든 다시 만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까맣게 잊혀졌던 그 누군가를 전혀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마주 칠 때에 감격이 인생길에 찾아오게 된다. 그러면서 그 얼굴에 삶의 무게가 내려앉아 있음도 발견한다. 성숙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뭔가 낯선 느낌이다.
누구나 등에 견디기 힘든 짐을 지고 살아간다. 그 무게를 감당하다보니 자신이 변해가는 것조차 감지하지 못하며 나이가 들어간다. 짐이 없는 인생은 로망일 뿐이다. 등에 짐이 있기에 세상을 바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버겁기도 하지만 등에 있는 짐 때문에 늘 조심하면서 바르고 성실하게 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와 돌아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해준 귀한 선물이었다. 등에 짐이 없었다면 사랑을 몰랐을 것이다. 내 등에 있는 짐의 무게로 남의 고통을 느꼈고, 이를 통해 사랑과 용서도 알게 되었다. 등의 짐은 나에게 사랑을 가르쳐 준다. 성숙의 경지로 끌어가기도 한다. 내 등에 짐으로 겸손과 소박함의 기쁨을 깨달았다.
평생을 아프리카 선교에 헌신했던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어느 모임에서 자신의 숨겨놓았던 가정사를 밝혔다. 어느날, 집을 나가버린 방탕한 아들의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그 사실은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크나큰 아픔이요, 고통이었다. 하지만 리빙스턴의 연설은 사람들의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아버지를 거역하고 세상 길을 가버린 그 아들을 생각하면서 그는 늘 남들 앞에 겸손한 마음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어려움을 당하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외면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아프리카 선교에 최선봉에 섰던 그에게도 아프고 무거운 짐이 있었던 것이다.
배를 운항할 때에 반드시 밑바닥에 채워 넣는 물이 있다. 이것을 ‘평형수’(ballast water)라고 한다. '평형수'는 외부의 조류나 파도에 의해 배가 심하게 흔들릴 때 복원력을 발휘해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평형수를 넉넉히 채운 배는 외부 충격으로 선체가 기울어도 원 상태로 재빨리 복원되지만. 평형수가 부족하면 배가 중심을 잃고 뒤집어지는 재앙을 맞을 수 있다. 인생은 먼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다. 항해 도중 험한 조류와 파도를 만나거나 가족 중에 사고를 당하거나 사업을 하다 부도를 맞기도 한다. 그런 일로 내 삶의 배가 전복되지 않으려면 미리 평형수를 채워두어야 한다. 나에게 기쁨의 '평형수'가 충분하다면 고난의 위기에서 삶을 추스릴 수 있을 것이다.
내 등에 짐이 있는 것이 당장은 힘들고 괴로워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를 나되게 한 소중한 멍에임을 깨닫게 된다. 사람이 살아갈 힘은 외부에서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것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우리 삶에 크고 작은 근심거리들이 당장은 우리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지만 어쩌면 내 인생을 지탱해 주고 균형을 잡아주는 선박 평형수일 수도 있다. 따라서 내 등에 짐이 커다란 은총임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