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아이들은 스타가 되고 싶어한다. 마침 불어닥친 한류열풍으로 한낮 꿈이 아닌 인기와 돈이 동시에 보장된 그 길을 가려고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예술을 하면 배가 고팠다. 하지만 진정성은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표출되었다. 가슴을 파고드는 노래, 그림, 소설, 연극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이제는 그 모든 것이 재물과 연결되어 있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만 불러도 그 조회 수 만큼 작곡, 작사자 뿐 아니라 가수에게도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드라마나 영화를 찍을때에도 한국만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 동남아 나아가 세계적인 추이를 만족시킬 수 있는가를 내다보며 만든다. 3년 전, 베트남에 갔을 때에 시장 가게마다 한국드라마를 틀어놓고 쉼취해 있는 것을 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한문으로 俳優(배우)는 사람 인(人)에 아닐 비(非)를 쓴다. 직역하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배역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이 그 사람이라고 착각을 한다. 70년대만 해도 악역을 맡은 배우가 길거리에 나타나면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해야 했다. 그만큼 순진하고 단순한 시대였다고나 할까? 드라마나 영화가 흥행하면 주인공은 CF 모델로 발탁되어 억대의 수입을 거머쥐게 된다. 미국은 평범한 이웃을 광고 모델로 세우는 것 같은데 한국은 유명인과 CF는 절대 관계를 가지게 된다. 하기야 나도 한국 인천공항 편의점에서 피겨여왕 김연아가 선전하던 ‘강원평창수’를 사서 마셨으니까. 광고의 효과는 대단하다.
연극 <장수상회>가 수년째 관객을 모으며 무대에 올려지고 있다. 팬데믹으로 열기가 식은듯하지만 나이들어 기억을 잃어가는 노부부의 로맨스를 그린 연극은 잔잔한 감동으로 인생을 생각하게 하고 가족 단위에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그 중심에 배우 신구가 있다. 배우 생활 55년을 이어가는 고령의 나이에도 영화, 드라마, 예능 그리고 CF까지 종횡무진 활동하며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창 공연에 바쁜 그를 찾아간 기자가 물었다. “배우로서의 삶이 무엇이냐?”고. 신구는 심크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개똥같다.” 질문하던 기자가 당황한다. 의외의 답이었기 때문이다.
명배우 신구는 왜 배우에 대한 많은 말 중에 굳이 ‘개똥’이라 했을까? 워낙 술을 즐기는 그였기에 술김에 한 말일까? 아마도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노후연금과 상사도 없기에 장기적으론 꺼리기는 직업이지만 ‘처자식 벌어 먹여 살렸기에 좋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새삼스레 ‘개똥’이라는 말의 본의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기로 하였다. 대학에 입학하면 처음 대하는 학문이 철학개론이다. 특이한 헤어스타일의 교수가 하는 강의를 열심히 듣다가 친구끼리 내뱉은 말은 ‘개똥철학’이었다. 그럴듯하기는 한데 끝내 뜻을 파악할 수 없어 자구책으로 쓴 말인 듯 하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는 속담도 있다. ‘개똥밭에 뒹굴어도 저승보다는 이승이 낫다.’는 말도 있다. 스티브잡스는 2005년 스탠포드대 졸업 축사에서 비슷한 말을 인용하였다.
분명한 것은 개똥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는 것이다. 어쩜 인생은 신구의 말처럼 ‘개똥’같이 아무도 내 인생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매순간 흘러가는 삶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자신이 아닌 각본에 따라 역할을 달리하는 배우의 삶을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시인 김지하는 원색시 “옛주소”에서 “그래 이제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고 외로움밖에 없고 후회할 일밖에 없고 참 개똥 같은 인생이다.”라고 읇조린다. 시를 쓸 때는 목숨 걸었지만, 시간이 흘러 방랑과 감옥의 산을 지나 이윽고 어느덧 신 앞에 앉았는데 외로움도 후회함도 없는 것을 보고 그렇게 외쳤던 것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성실’과 ‘착함’을 주입 당하며 성장했다. ‘성실’은 생의 바탕이라 믿으며 살아왔다. 다른 어떤 인생의 기술보다 진정성 있는 인간이 되는 과정은 성실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성실하게 살면 삶은 고독하다. 그러니 이렇게살아도 저렇게살아도 결국 ‘개똥 같은 인생’이 아닐까?
인생은 결국 참고 견디는 자가 단열매를 먹는다는 단순 논리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