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묘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같은 일이 반복되면 ‘그렇게 될 것’이라는 신념(?)이 은연중에 생기는 것이다. 바로 징크스이다. 징크스란 ‘불길한 일 또는 사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운명적인 일’을 뜻한다. 어원은 일반적으로 딱따구리의 일종인 ‘개미잡이’라는 새에서 찾는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점치는데 사용하던 새의 그리스어 이름이 junx, 라틴어가 jynx이다. ‘그럴 리가 있나?’ 하지만 지나고나니 그랬다. 이것이 반복되면 징크스가 되는 것이다. 일종의 미신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런 보이지 않는 흐름에 휘말려 사는 것이 인간이다.
시험 치는 날 미역국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징크스는 ‘미끄러진다’는 공통된 상징을, 시험 날 엿을 선물하는 것은 ‘찰싹 붙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낸 것이다. 어떤 학생은 시험 당일 속옷을 갈아입으면 시험을 망치는 징크스가 있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그 정도가 더 예민하다. 월드컵 징크스는 전 대회 우승국이 다음 대회에서 조별 리그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한국은 스포츠 강국이다. 그중에 구기 종목에서는 걸죽한 스타들이 즐비하다.
야구선수 이승엽은 실로 한 시대를 풍미한 대타자였다. 그렇게 큰 체격도 아닌데 그는 신기록을 갱신하며 한국야구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런데 이승엽이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여 통산 99호 홈런을 친 후 곧바로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다. 부상이 원인이었지만 「100」이라는 숫자 앞에서 극한 긴장감을 추수리지 못하고 헛방망이질을 해댔다. 그는 슬럼프를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쳤다. “성적이 안 좋은 날은 경기장에서 돌아올 때 다른 길로 돌아온다”는 고백도 했다. ‘라이온 킹’이라는 그의 별칭에 어울리지 않는 나약한 말이었다. 결국 그는 일본 통산 100호 홈런을 쳐내고야 만다.
서양인들은 ‘13일의 금요일’을 불길한 날로 꺼린다. ‘13’은 배신의 숫자로 생각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4자(字)를 아주 싫어한다. 죽을 死(사)를 연상시키며 꺼려하는 것이다. 이런 영향일까? 나도 어느 순간인가부터 “4”를 보면 기분이 이상해졌다.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눈을 떠서 시계를 보니 4시 44분이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사는 핫보로 263선상에는 오피스 번지수가 ‘444’인 곳이 있다. 목사이지만 민족을 관통하고 있는 피는 속일 수가 없나보다. 한국에 가보면 엘리베이터에 4층을 F로 해 놓은 곳을 가끔 발견한다. 병원 건물은 4층 표시 없이 ‘5’로 넘어간다. 병실 번호에서도 ‘4’를 제외한다. 아침부터 까마귀가 울거나 검은 고양이가 앞을 지나가면 불길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골프처럼 장시간 혼자서 승부를 엮어가는 경기에선 정신적 안정이 절대적이다. ‘예스퍼 파네빅’은 한동안 3번 공을 피했다. 3번 공만 치면 쓰리퍼트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대회 때마다 자기의 혈액을 담은 작은 병을 갖고 다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잭 니컬러스’는 바지 주머니에 1센트짜리 동전 세 개를 넣고 다녔다. 페어웨이를 걸어갈 때 호주머니 속에 든 동전들을 만지작거리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게 이유였다. 그리고, ‘어니 엘스’는 타이거 우즈가 징크스다. 한때 골프전문가들이 미래를 대표할 최고의 스타로 점찍었던 어니 엘스가 타이거우즈의 등장으로 기를 못 펴고 말았다. US 오픈과 브리티시 오픈에서 연거푸 우즈에 밀려 우승 문턱에서 주저앉기도 했다.
징크스의 적나라함은 인간은 결코 완벽할 수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약하기에 인간이고, 그래서 겸손해야 하고 움켜쥐려고 하기보다 유통하며 살아야 함을 보여주는 거룩한 싸인 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