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게 영화다

by 관리자 posted Jul 23, 202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윤정희.jpg

 

 

 

 

  어느 시대나 그때그때마다 삶의 버거움을 벗겨주는 스타가 있었다. 요즈음의 대세는 BTS, 레드벨벳이라지만 아날로그 시절에는 고달픈 인생을 위로해 주는 청량음료 같은 스타들이 때마다 등장했다. 초등학교 시절에 스타는 프로레슬러 김일이었다. 어쩌다 경기가 열릴라치면 동네 전체가 술렁거렸다. 호랑이와 곰방대가 그려진 가운을 걸치고 링에 오르면 모두의 심장은 고동쳤다. 드디어 종이 울리고 경기가 시작된다. 작전이 그랬는지, 컨디션 때문인지. 김일은 초반에는 상대선수에게 흠씬 두들겨 맞으며 고전을 한다. 워낙 거친 경기라지만 심하다 할 정도로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할 때 어린 마음은 쪼그라 들었고 사람들은 탄식을 했다. 그러다가 회가 거듭하고 극한 상황에 이를때에 김일의 박치기가 작렬한다. 기세등등하던 상대 선수는 박치기 한방에 나가 떨어지고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흥분했다. 드디어 상대선수의 몸에 김일의 몸이 겹쳐지고 , , 쓰리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김일의 승리이다.

 

  아버지는 경찰이었다. 따라서 극장의 프로가 바뀌면 지소(파출소)로 초대권이 배당되었다. 당시 경찰의 권위는 대단했다. 덕분에 어린시절부터 나는 보고싶은 영화를 마음껏 볼 수 있었다. 그것도 가장 좋은 좌석에서 말이다. 나이가 들어가도 영상을 보는 것이 한없이 즐거운 것은 그런 삶의 배경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장동휘, 박노식, 독고성, 문오장의 액션은 내 가슴을 들뜨게 했다. 그러면서 곱디고운 여배우들에게 매혹되어 가며 나이를 먹어갔다. 한국 영화 최초 여성트로이카는 남정임, 문희, 윤정희이다. 톡톡 튀는 연기로 인기를 끌었던 남정임은 젊은 나이에 암투병을 하다가 가장 먼저 이 세상을 떠나갔다. 문희는 깊은 심연의 눈이 매력이었는데 인기가 오르자마자 모재벌과 가정을 꾸미며 스크린을 떠났다. 그리고 남은 윤정희.

 

 본명은 손미자이다. 전남여고를 거쳐 중앙대학교 대학원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파리 3대학에서 수학한 정통파 인테리배우이다. 대한민국 여자 석사 배우 1호 윤정희는 1966년 경이로운 1,200:1의 경쟁률을 뚫고 합동 영화 주식회사의 신인배우 오디션에 합격하여 <청춘극장>으로 데뷔하여 곧바로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이후 무려 330편의 영화에 출연한 불세출의 배우였다. 2010. 이창동 감독의 영화 <>의 주연으로 노익장을 과시하며 활동을 했지만 이제는 77세 고령의 나이에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소식에 안타까움을 더한다. 영화 <>에서 알츠하이머를 앓는 미자를 연기했는데 우연치고는 운명처럼 주인공 미자와 같은 병으로 노년에 삶은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윤정희는 말했다. “사는게 영화다그 한마디에 무언가 표현하기 힘든 물결이 밀려왔다. 더디가는 것 같던 세월이 돌아보면 엄청 빠르게 지나갔음을 실감한다. 그러면서 맞아, 사는게 영화야~” 외치게 된다. 유행가 가사처럼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니고 내가 떠나 온 것도 아닌데 청춘은 그렇게 저만치 멀어져 갔다. 스크린에서 만났던 윤정희의 모습이 나이가 들어도 멋지게 마무리 되었으면 좋겠다. 동쪽에서 이글거리며 떠오르던 태양이 저녁이 되면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멋지게 넘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가수는 자신이 부른 노래 가사처럼 살고, 배우는 자신이 명연기를 한 배역처럼 사는 것일까? 누군가 일본 장수마을을 여행하는 중 어느 선술집 벽에 적혀있는 낙서를 발견했다. 제목은 19세와 91세의 차이였다. “사랑에 빠지는 19/욕탕에 빠지는 91, 도로를 폭주하는 19/도로를 역주행하는 91, 마음이 연약한 19/온몸의 뼈가 연약한 91. 두근거림 안 멈추는 19/ 심장질환 안 멈추는 91. 사랑에 숨막히는 19/떡 먹다 숨막히는 91. 수능점수 걱정하는 19/혈당혈압 걱정하는 91. 아무것도 모르는 19/아무것도 기억없는 91. 자기를 찾겠다는 19/모두가 찾고 있는 91.” 이것이 나이가 지긋한 분들의 현실 인 것 같다.

 

  진정 인생이 영화라면 이왕이면 해피앤딩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