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편지 10/30/15

by 관리자 posted Dec 0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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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앞마당에는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자태를 뽐내며 서있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이 나무는 희한하게 늦은 봄에 잎사귀를 틔우고 가을만 되면 일찌감치 낙엽을 떨어뜨린다. 남들이 새싹을 드러낼 때에는 느긋하다가 느즈막히 잎을 드러내는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가을엔 왜 그리 급하게 이파리는 털어내는 것인지 서운한 마음까지 든다. 예쁜 색깔의 낙엽을 조금만 더 머금고 있으면 좋으련만 말이다. 하지만 주차장에 차를 대고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으며 집에 들어서는 재미도 ‘쏠쏠’하다. 또한 식구들이 들어오는 소리를 낙엽 밟는 소리로 가늠 할 수 있어 좋다.


지난 금요일 장애인들을 동반하고 포코노로 ‘단풍놀이’를 떠났다. 예년보다 단풍놀이가 여유롭게 느껴지는 것은 밀알의 밤을 일찍 마쳤기 때문이리라! 장애인들과 나들이를 하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부축해 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하는데 평일이다 보니 봉사자들이 시간을 내는 것이 여의치 않다. 작년에는 한 여성 지체장애인이 돌부리에 넘어져 큰 부상을 당할 뻔 했다. 금년에도 여지없이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져 당황을 해야 했다. 이제 장애인들을 동반하고 야외에 나가는 일은 접어야만 할 것 같다.


그런 정도야 장애인 사역을 하며 각오해야 하는 일이고, 모처럼 포코노 한복판에 들어가 가을의 정취를 실감하며 위로를 삼았다. 점심을 먹으며 바라본 하늘. 어쩌면 저토록 파랄수가! “저 하늘을 보세요. 완전 코발트색이네요!” 나의 외침에 모두가 하늘을 쳐다보며 탄성을 질렀다. “와!” 파아란 하늘 한복판에 수리한마리가 창공을 가르며 맴돌더니 어디론가 재빠르게 곤두박질치며 날아간다. 숲속에서의 기분 좋은 현기증을 오랜만에 느끼는 시간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만난 성조기, 그리고 새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을 연출하고 있었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이상하게 가을만 되면 가슴이 스산해 졌다. 가을 냄새가 외로움의 기운을 코밑으로 들이 밀었다. 그 외로움의 정체는 습도가 현저히 낮아짐에서 유발 되었으리라! 끈적거리던 더위가 떠나가며 그 빈자리를 외로움이 찾아든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금년 가을은 이상하리만큼 덤덤하다. 나이 탓일까? 아니면 내 감정이 말라든 것일까? 그러면서도 외로움 없이 가을을 지나가고 있음이 감사하기도 하다. 가을이면 왠지 모를 설레임으로 가슴앓이를 해야 했던 그 단계를 달관하여 넘어가고 있는 내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가을이면 숲속을 거닐며 낙엽을 줍던 시절이 있었다. 약간은 색이바래고 벌레가 먹어 예술적으로 구멍이 ‘숭숭’ 뚫린 낙엽을 만나면 진주를 얻은 양 소리를 쳤다. 다양한 색깔의 낙엽을 모으며 소녀처럼 미소 짓던 때가 있었다. 상남자(?)였던 내게 그런 감성이 있었음이 놀랍고 감사했다. 낙엽의 용도는 다양했다. 방송국에 음악신청을 할라치면 낙엽은 한몫을 단단히 해냈다. 방을 장식하는 소품이 되기도 하고 낙엽위에 직접 글을 써서 보내기도 했다. 일단 편지를 쓰고 글의 효과를 살리기 위해 그 편지 한 켠에 낙엽을 밀어 넣어 보내기도 했다.


우리시대에는 펜팔이 유행했다. 유명 학생지에는 펜팔난이 실렸고 이름과 주소만 보고 편지를 날리면 한참 만에 답장이 왔다. 반갑다고 편지를 바로 보내지 않는다. 이를테면 ‘밀당’(밀고 당기기)을 했다고나 할까? 너무 빨리 보내면 헤퍼보이고 너무 늦게 보내면 상대가 지칠까봐 나름대로 타이밍을 재어가며 편지를 발송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을 못한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제일먼저 엄마에게 묻는 말은 “편지 온 것 없어요?”였다. 편지봉투를 개봉할 때에 설레임, 편지를 읽어가다 보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져갔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행복하다.


가을은 인생을 생각하게 한다.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고은 시인의 <가을편지>가 피부에 와 닿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