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 반장

by 관리자 posted Oct 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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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아 기훈.jpg

 

 

  차렷, 열중쉬어, 차렷, 선생님께선생님 핸드폰께 경례!” 조기훈(12)군이 우렁차게 외치자 친구들이 까르르 웃는다. 기훈이는 서울 목동 신서초등학교 6학년 6반 학급회장이다. ‘경례를 하기 전까지 기훈이는 휴대전화가 신기한 듯 한참 들여다보던 참이다. 나이는 12세이지만 기훈이의 정신연령은 6세이다.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데다 간질 증세도 있어 병원에 실려 갈 때도 있다. 동그랗고 하얀 얼굴의 이 아이는 수업을 따라가기는커녕 정상적으로 교실에 앉아 있기도 어렵다. 하지만 올해 기훈이는 달라졌다. 난생 처음 학급회장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30명을 이끄는 것도 그의 몫이다. 친구들은 표를 얼마나 많이 얻었는데요” “생각보다 훨씬 잘해요라며 기훈이를 치켜세운다.

 

  담임인 정송자 교사는 당시를 돌이키며 장애아를 회장으로 뽑기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아이들이 장난을 하는 건가? 제가 기훈이를 많이 챙기니까 괜히 반항하는 건가싶었죠. 아이들이 우리가 잘 도와줄 테니 걱정 말라고 하더군요.” 정 교사가 기훈이를 맡게 된 올 3. 첫 시간에 장애인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이론과 실제 사례 등을 엮은 장애통합 교육을 실시했다. 가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거나 친구를 때리는 기훈이의 행동에 놀라는 학생들이 이해심을 갖도록 수시로 다독였다. 장애를 가졌던 위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토론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러는 한편 정 교사 스스로는 학기 시작될 때마다 스트레스가 심해져 발작도 잦아진다는 기훈이 부모의 말을 듣고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 직접 집으로 찾아가 학교로 데려오는 일을 한 달간 했다. 수업 시간에 안절부절못하는 아이를 바로 옆에 앉혀놓고 손을 잡은채로 강의를 했다. 기훈이만 덧셈 · 뺄셈 · 문장 베껴 쓰기 정도의 단순 특수학습을 시키는 것은 물론, 음악 · 미술 · 체육시간에도 특별한 프로그램을 필요로 했다. 가끔 과격한 행동을 할 때는 껴안고 달래느라 녹초가 되기도 했다. 며칠 만에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느냐작전을 짠 것이다

 

  기훈이의 발작은 3월에 네 번, 4월에 두 번으로 줄었다. 5월에는 한 번도 없었다. 숫자가 줄어들 때마다 정 교사는 남몰래 가슴을 쓸어내린다. “특수학생만 가르치는 것보다 일반 학생들과 함께 가르치는 것이 더 힘들 때가 있다고 한다. “자칫 다른 아이들을 들러리로 만들 수가 있거든요. 누가 다른 누구를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공존(共存)할 수 있게 하려면, 모두에게 더 신경을 써줘야죠. 이젠 부모님들도 우리 반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하고 도와주세요.”

 

  교직 경력 25년인 정 교사는 야간대학원에 2년 반을 다니며 특수학교 교사 자격증을 취득한 바 있다. 정 교사는 장애아가 부모를 가려 태어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교사들도 수많은 단계의 장애아를 만나게 된다제대로 공부해야 장애아와 비장애아 모두를 제대로 돌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똑똑한 아이, 집안 배경이 튼튼한 아이, 그래서 때를 따라 두툼한 촌지(寸志)를 전해오는 아이를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좋아한다. 그런 와중에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가슴으로 사랑하며, 아이들에게 장애 아동의 아픔을 가르치고 장애를 가진 아이가 별세계의 사람이 아닌 것을 알리고 그들이야말로 사랑에 배고픈 존재임을 인식시키는 정 선생님이야말로 이 시대에 진정한 상록수이다.

 

 

 

 

 기훈이의 발작 증세가 현저히 줄어드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았기 때문이다. 반장이 되어 시간마다 인사 구령을 붙이고 자기의 말에 반 친구들이 호응하는 모습을 보며 기훈이는 자신도 모르게 나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되었고 그에게 숨어 있던 에너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장애를 가졌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그 장애를 끌어 안아주기만 한다면 장애를 가진 것이 오히려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조건이 될 수 있다. 오늘 만나는 사람에게서 부족한 모습을 발견할 때 그 부족을 채우기 위해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삶은 청명한 가을날처럼 아름다워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