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쟈?

by 관리자 posted Jan 21, 202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여사친.jpg

 

 

 

  철없던 시절에 친구들끼리 어울려다니며 스스럼없이 얘기를 나누다가 끝에 던지는 말이 있었다. “그쟈?” 무척이나 정겨움을 안기는 말이다. 인생을 살아보니 더딘 듯 한데 빠르게 지나는 것 같다. 지루한 듯한데 돌아보니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있었다. 손에 잡힐 듯 기억이 생생한데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지나가 버린 것이다. 비슷한 연배끼리 만나면 하는 소리가 있다. “똑같으시네요? 여전하세요하지만 지인들의 자녀들을 보면 세월이 얼마나 무섭게 속도를 내고 있는지 알아차린다. 자주 만나는 세대의 사람들은 세월을 느끼는 감각이 무뎌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조금만 아래를 내려다보면 무척이나 멀리 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쟈?

 

  젊을 때는 다른 사람보다 앞서가는 것이 흥미로웠고 소위 성공하고 싶었다. 앞만 보고 달려가며 무언가 채워지면 우쭐하고 처지면 낙담이 찾아왔다. 36. 신내동에서 첫 담임 목회를 시작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씻은 후 교회로 향한다. 새벽예배를 인도하고 오로지 교회에만 머물렀다. 그렇게 온종일 목양실에서 말씀에 몰두하고 기도를 많이 하던 때가 그때였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진정한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내 청춘을 드렸다. 한편으로는 대형교회를 꿈꾸면서 말이다.

 

  어릴 때부터 한 교회에서 어울리며 부대끼며 자란 친구가 있다. 부목사직을 사임한 친구는 새로 개발되는 분당에 교회개척을 한다는 포부를 전해왔다. 1996년 첫 입주가 시작될 때에 그는 분당시범단지에 상가를 분양받아 1호로 교회를 개척했다. 설립예배 참석차 처음 찾아간 분당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확실히 신도시다운 세련됨과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같은 충에 이미 개척교회가 4개나 들어서 있었다. 이후 5개월이 지났을때인가? 내가 목회하는 교회는 100여명의 성도들이 출석하고 있었는데 친구 목사 교회는 이미 500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개척 3년 만에 대지를 구입하여 새예배당을 건축하고 입당을 했다. 입이 벌어졌다. 뭔가 모를 자괴감이 찾아왔다. 새예배당을 다녀 온 후 한숨만 나왔다. 비교의식에서 찾아온 절망감이 나를 짓눌렀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이후 지금까지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하지만 나이가 깊어가며 큰 의미는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장애인 곁에 있는 내 모습이 더 대견하고 행복하다. 그쟈?

 

  사춘기에 가장 큰 관심은 이성이었다. 어느 날, 과외공부를 하다가 여중아이들과 미팅을 했다. 남중이었기에 푸릇푸릇한 같은 또래 여학생을 만난다는 것은 심장이 터질 듯이 가슴을 설레이게 했다. 빵집에서 만난 10명의 남 · 녀 학생들은 수줍은 듯 능숙한 척하며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흔한 방법인 소지품으로 짝을 정하고 만나기는 함께하되 짝을 지어 교제하기로 하였다. 두 번쯤 만났을까? 모임은 산산조각이 났다. 나 때문이었다. 일이 얽히려니 하필 그 즈음에 내가 짝사랑하던 문희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겁 없이 양다리를 걸쳤고, 소문은 금새 퍼져나가 강력한 여학생들의 항의를 받으며 그룹 미팅은 끝이 나 버렸다. 그때는 얼마나 미안하고 민망하던지? 세월이 지나고나니 절로 미소 짓게 만드는 풋풋한 추억이다. 그쟈?

 

  한국에 살 때에 미국에서 온 사람을 만나면 경외감을 느꼈다. 와우, 미국? 꿈의 나라, 언제나 한번 가보려나? 생김새도 경이로워 보였다. 미국에서 사는 것 자체가 동경의 대상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그곳에서 능숙하게 영어로 살아가는 모습이 그려져서이다. 그래서 던졌다. “영어도 잘하시겠네요?” 그런데 어느 날 내가 미국에 왔다. 그리고 내 생에 가장 긴 세월을 살고 있다. 살아보니 사는 곳은 다 똑같다. 영어? 그렇게 쉽게 정복되는 영역이 아니었다. 한국에 가면 사람들이 묻는다. “영어 잘 하시겠네요?” 시크하게 대답한다. “남이 하는 정도는 합니다.” 아주 적합한 대답이다. 미안한 표현이지만 살아보니 미국생활이 이제 신선하지 않다. 그쟈?

 

  그쟈?”그렇지?”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그 말에는 많은 뉘앙스가 있다. 동의를 구한다기보다 친근함을 안기며 한 울타리에 있음을 느끼게 하는 정겨운 단어이다. 추위를 이겨내다보면 봄이 오겠지? 코로나도 언젠가는 지나가지 않겠어? “그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