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옥 & 영희

by 관리자 posted Aug 05,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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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아를 둔 학부모들은 일평생 무거운 돌에 짓눌려 있는 듯한 고단한 삶을 살아야 한다. 옆집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자라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기대임을 실감하면서 말이다. 소중한 내 아이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 진하다. 남들 눈에는 어떻게 보이든 부모는 그 아이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모성애중에 가장 극치는 장애아 어머니라고 한다. 하지만 형제는 어떨까? 이것은 다른 문제이다. 차원이 달라진다. 잘 수용하며 함께 살아가는 가정도 있지만 힘겹게 동생 혹은 오빠, 누나를 바라보며 사는 가족도 있다.

 

  그런 예민하고 다루기 힘든 내용을 드라마가 담았다. 2004년에 김수현 작가가 <부모님전상서>라는 드라마로 그 문제를 다루었다. 톱스타 김희애가 장애아동의 엄마로 분하여 비중 있는 연기를 펼쳤다. 그리고 얼마 전 종방한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진 언니를 둔 동생의 가슴 아픈 사연을 실타래를 풀어내듯 엮어내었다. 부모들은 고아원에서 자란 착하디착한 사람들이었다. 화가인 두 사람은 소박한 꿈을 그리며 가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쌍둥이 자매중 한 아이가 다운증후군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며 그 꿈을 접어야만 하였다.

 

  부모는 항상 말해주었다. “네 쌍둥이 언니 영희가 우리에게 온 것은 우리 가족이 선한 사람을 찾는 신의 심사를 통과한 것이야. 신은 조금 아프거나 특별한 아이를 세상에 보낼 때 이 특별한 선물을 감당할 만큼 착하고 큰 사람을 고르는데 그중에 우리 가족이 당첨된 것이란다. 하지만 영옥(한지민)은 그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신의 실수다그러면서 나는 결코 착하지도 않고 모든 것을 감당할 만큼 큰사람도 아니다. 나는 신의 선물이 부담스럽고 싫다.”고 절규한다.

 

  엎친데덮친격으로 영희와 영옥이 12살 때에 부모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영옥은 자신과 영희가 동시에 태어난 것이 불행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소리친다. “영희가 특별한 건 맞다. 특별히 나를 힘들게 만드니까”. 이후 쌍둥이 자매는 친척 집을 전전했지만 어디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한다. 버거운 삶은 살던 영옥은 결국 해서는 안될 일을 단행한다. 언니를 지하철에 혼자 두고 내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끝내 버리지는 못한다.

 

  영옥은 제주에 와서 해녀의 삶을 살아가는 중에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 그녀는 과거를 회상하며 읇조린다. “돈 벌러 가는 건 핑계였다. 그래서 일자리를 멀리 옮겼다. 약속도 어겼다. 돈만 보내고 자주 보러 가지 않았다. 나중에는 온갖 핑계를 댔고, 최근 2년간 연락만 하고 보러 가지 않았다. 그러다 보면 영희가 날 잊을 줄 알았다. 아니면 기다리다 지쳐 나를 안 찾거나. 내가 영희를 너무 쉽게 봤다라고. 영옥의 상황은 모른 채 정준은 결혼을 전제로 영옥에게 부모님께 인사도 하자며 제의해 온다. 그런 정준에게 영옥은 부담스럽고 심각한 관계가 싫다며 이별을 통보했다. 이후에 만나는 세 사람. 아름답게 엮여가는 관계를 보며 눈시울을 적셨다.

 

  실제 다운증후군을 가진 정은혜는 이영희 캐릭터를 연기하며 묵직한 울림을 안겼다. 영희는 장애인이 얼마나 아름다우며 순수한 영혼을 가졌는지를 투영한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멋진 그림들로 자신의 성장을 알리는 장면이 등장했다. 정은혜는 실제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는 캐리커처 화가로 활동 중이다. 어눌한 말투의 영희. 하지만 구김살 없는 연기에 감동은 증폭된다. 얼마나 대견한지. 장애인 사역자로 자부심까지 느꼈다.

 

  노희경 작가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를 통해 다양한 분야에서 평범하지만 남모르는 아픔을 가진 사람들의 켜켜이 쌓인 서사를 다정하게 풀어내 준다. 특히 장애인을 등장시켜 치유의 극적 효과를 연출한다. 공간을 아예 제주로 옮기고, 마치 외국어처럼 낯선 제주 토박이말에 자막까지 붙여 가며, 변방이었던 제주를 세상의 중심으로 가져왔다. 이 땅에는 영희가 많기도 많다. 장애인 자녀를 둔, 그리고 장애 형제자매를 끌어안고 사는 가정들이 오늘도 힘겹게 삶을 꾸려가고 있다. 힘을 내자. 언제는 수월하던 때가 있었던가. 제주의 영롱한 바다처럼 푸른 꿈을 안고 힘차게 삶의 노를 저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