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젊어서부터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철학이 있다. “세부류와는 절대 싸워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불신자, 여자, 연하이다. 목사이다보니 신앙이 없는 사람을 이길 확률이 없다. “당신 목사 맞아” 그러면 끝이다. 여자를 이기려고 생각하는 남자는 아직도 덜떨어진 사람이다. 어떻게 말로 여자를 이길 수 있다는 말인가?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하고는 절대 논쟁을 하지 않는다. “나잇값 좀 하세요”하면 할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이제 나이가 장난이 아니다. 아니 숨이 가쁠 정도이다. 나이가 들면 세대만큼의 mile로 간다고 하더니 요사이 그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월요일을 시작하면 어느새 주말이고, 월을 시작하면 어느새 다음달이 다가오고, 금년도 “덥다, 덥다” 외치다보니 9월의 문턱이다.
지난 6월 우리는 친근한 국민 MC 송해를 떠나보냈다. <전국노래자랑>을 34년이나 이끌던 명사회자는 95세를 일기로 저세상 사람이 되었다. 그는 가면서 외쳤다. “한세상 잘 살다갑니다~” 구순에 나이까지 온 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다가 간 그는 진정 행운아였다. 사실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 이기동에 비하면 그는 성공적인 코메디언은 아니었다. 하지만 구수한 입담과 서민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인상으로 어느 누구보다 진한 인상을 남긴 인물이다. 그보다 앞서 <가족오락관>의 장수 사회자 허참이 2월 우리 곁을 떠나갔다. 이름도 특이했던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명MC였다. “몇대몇?”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의 향년 72세이다.
사람들은 얼마나 살고 싶어할까? 여론조사에 의하면 남성은 80대 중반, 여성은 90세 전후로 나타났다. 내심으로는 100세까지 살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평균수명은 남자 79세, 여자 85세이다. 문제는 건강이다. 장수하는 분들중에 병치레를 안하고 아주 건강하게 살다가는 노인은 드물다. 빠르면 60대, 70에 접어들면 질병과 싸우며 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면 인류가 기억하는 인물들은 얼마나 살았을까? 공자는 그 시대에 73세. 석가모니 80세. 소크라테스 70세를 살았다. 조선시대에 세종대왕은 53세, 이순신 54세. 우리나라 초대대통령 이승만 90세. 무려 18년 5개월 동안 권좌를 호령했지만 박정희는 겨우 62세를 살았다. 미국 대통령 링컨은 56세, 케네디는 46세에 총탄에 맞아 생을 마감했다. 불로초를 찾아 영생을 추구했던 진시황제는 50세. 영웅 나폴레옹은 51세. 천하를 호령했던 징기스칸은 65세를 살았다.
공자는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40세에는 불혹(不惑), 세상의 욕심에 미혹하지 않고, 50세에는 지천명(知天命),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60세에는 이순(耳順), 귀가 순해지고, 70세에는 종심(從心), 내 마음이 내키는 대로 살아도 크게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고 설파했다. 진정 그렇게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가고 있을까? 기대수명이라고 하지만 진정 그 나이에 들어서면 “이제는 족하다. 이제 떠나리라” 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더 살고 싶어하지 않을까? 사는 것이 힘들어 ‘이제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고 하다가도 막상 위험상황을 벗어나면 “아이고, 죽을뻔했네” 외치는 것이 인생이다.
내 나이를 조용히 돌아본다. 지난 봄. 한국방문 후 출발하기 전, 신속항원검사를 받으러 병원에 갔더니 간호사가 나를 “아버님”이라고 부른다. 필라에 한 노인복지원에 스탭을 만나러 갔더니 안내 데스크에 있던 분이 나를 “어르신”이라고 해서 놀랐다. 내가 인정하던 안하던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고 이제는 선배보다, 형님보다 아우들이 더 많아지는 나이가 되었다. 진정 나잇값을 하는 진정한 어른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는 명언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드니 자꾸 가르치려하고 고집만 늘어가는 것 같다. 남의 말은 잘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늘어가는 것이 노인이 아닐까?
“얼마를 사느냐?”보다 “얼마나 멋지게 사는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어디를 가든 환영을 받고 좋은 평판을 들으며 더 나아가 존경받는 자리까지 나아간다면 나잇값을 하는 인생인 것 같다. 옛날 어른들의 말 “나이는 들어도 마음은 청춘이야!”가 실감나는 세월을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