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아름답고 소중한 얘기들

by 관리자 posted Sep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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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시대 최고의 락밴드 <송골매>전국 공연을 나선다는 소식을 들으며 저만치 잊혀졌던 추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송골매가 결성된 것이 1979년이니까 40여년 만에 노장(?)들이 무대에 함께 서는 것이다. 공연 테마가 열정이다. 20대부터 지켜본 배철수 & 구창모는 어느새 70 나이에 접어들었다. 유튜브에 떠오른 그들의 공연을 보며 가수라는 직업에 대해 경이감을 느낀다. 사람에게 가장 오래가는 것이 목소리라고 했던가? 이미 익숙해서인지 어쩌다 마주친 그녀” “모두 다 사랑하리를 부르는 구창모의 목청은 여전히 낭랑하고 파워풀했다.

 

  반면, 미성은 아니지만 은근한 마성의 배철수가 부르는 빗물”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는 잔잔히 감성을 자극해 들어왔다. 사실 처음 배철수가 무대에 등장했을때는 비호감이었다. 마른 체형, 더부룩한 장발. 거기다가 콧수염까지. 소위 전형적인 양아치 모습이었다. 세월이 지나보아야 그 사람의 진가를 아는 것일까? 그는 매일 저녁 <배철수의 음악캠프>32년간 생방으로 진행하고 있다. 2004년부터 KBS <콘서트 7080>을 무려 14년동안 진행하기도 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인기 스타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가는 지금도 그는 여전히 현역이며, 이제는 오랜 친구 구창모와 기타를 메고 멋진 공연을 하고 있다.

 

  우리 시대 영화 한편이 떠올랐다. 1975년 최인호 원작,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이다. 유신치하의 암울했던 70년대 대학가 풍속도를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주인공들의 절망과 좌절이 주제다. 약간 얼띤 주인공 병태(윤문섭)와 영철(하재영)은 모두 명문대 철학도들이다. 영장을 받고 신체검사에서 영철은 불합격되고 병태는 갑종합격이 된다. 주인공 병태와 영철이 살아가면서 겪는 고뇌와 갈등은 처음부터 동일한 맥락에 위치 해 있다. 밝고 순진무구해 보이는 젊은이다운 행동들의 저변에는 깊은 암울함과 좌절이 깔려 있다.

 

  순진하고 선량하며 기인적인 모습을 보이는 말더듬이 영철. 그는 이상주의자이다. 그의 꿈은 삼등 완행열차를 타고 동해로 가서 가슴 속에 신화처럼 숨 쉬는 고래를 잡아오는 것이다. 영화의 백미는 OST “고래사냥이다. 그 심정을 담은 익숙한 노랫말이 눈길을 끈다. 그에 비하면 병태는 보다 평균적인 보통 대학생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때론 흥분하고 튀다가도 다시 좌절하는 그러면서도 결국엔 그것을 익히고 적응해 가는 그 당시의 우리의 모습을 투영한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는 장발 단속’ ‘통행금지는 군부독재의 민낯을 드러낸 실체요. 오후 5. 사이렌이 울리며 국기하양식이 거행되고 모든 국민은 가던 길을 멈추고 국기를 바라보고 가슴에 손을 얹어야 했다. 영화관에서 상영직전 애국가가 울려퍼지는 촌극이 벌어지던 그 틈바구니에서 우리는 70년대의 청년문화를 만들어 냈다. 통기타, 생맥주, 청바지. 나는 그 시대를 통기타와 함께 몇 시간이고 노래를 부르며 견뎌낸 것 같다.

 

  영화는 곧 파국으로 치닫는다. 영자는 병태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끝 모를 좌절감에 빠진 영철은 자전거를 타고 항상 마음속에 그려오던 동해바다로 간다. 절벽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영철. 여기서 비로소 송창식의 걸쭉한 목소리로 빠른 템포의 고래사냥이 가사를 달고 흘러나온다. 영철은 자전거를 탄 채로 그 광대무변한 푸른 바다 위로 뛰어내린다. 친구의 죽음으로 흔들리는 병태는 빡빡머리를 하고 군입대를 하게 된다. 입영열차가 떠나가는 그 찰나 어디선가 헤어졌던 연인 영자(이영옥)가 나타나 열차 차창에 매달린 채 병태에게 입맞춤을 한다. 당황한 헌병이 달려온다. 이내 영화는 끝이 난다.

 

  나는 청년기를 홍릉(제기동)에서 보냈다. 가로수인 마로니에의 자태는 가을이면 커다란 잎을 떨어뜨리며 아름다움을 더했다. 깊어가는 가을 밤, 떨어지는 가로수 잎과 영화의 주제가는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가을 잎 찬바람에 흩어져 날리면~~’으로 시작되는 영화 속 주제가 김정호의 날이 갈수록이 젊은 가슴을 시리게 했다. 이제 젊음은 가고 중후한 세대를 살고 있다. 나이의 숫자를 더해가지만 우리는 아직도 방황의 행진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