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눈을 뜨면 외출을 한다. 사업이나 직장으로, 혹은 사적인 일을 감당하기 위해 집을 나선다. 누군가 출입문을 나설때면 배웅을 해준다. 덕담을 곁들여서 말이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께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깍듯이 인사를 하고 등교를 했다. 방과 후 집으로 달려가는 것은 언제나 미소지으며 맞이하는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문을 박차고 들어서며 “엄마!”하고 부르면 “아이구, 내 새끼 공부하느라 고생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가방을 받아주었었다. 그런데 엄마가 집에 없을때가 있다. “엄마!”를 외치며 부엌으로, 뒤뜰로 돌아치지만 어느곳에도 엄마는 없다. 갑자기 힘이 빠지며 짜증이 올라온다. 반갑게 다가오는 죄없는 강아지에게 화풀이를 했다.
노년에 아내를 먼저 떠나보내고 힘겹게 살아가는 지인이 있다. 제일 못견디는 것은 집에 들어갈 때 마주치는 어둠과 침묵이라고 하였다. 바쁘게 돌아치던 하루가 보람된 것은 누군가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리라. 아이들이 어릴때는 아빠가 집에 들어서면 바지가랭이를 붙잡으며 매어달렸다. 아빠를 반기는 아이들의 웃음과 순수함이 삶에 에너지를 주었고 자식을 기르는 보람을 느꼈다. 정말 그때는 조금만 늦어져도 아이들은 고대하며 아빠를 기다렸다. 이제 짝을 찾아 훨훨 날아간 아이들의 자취를 보며 기다리는 처지가 되었다.
밀알선교단에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발달장애아동을 Day Care하는 <사랑의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장애의 종류는 다양하다.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 언어장애가 있고 지능이 현저하게 낮아 소통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남이 지속되며 보이지 않는 교감이 이루어지고 통하는 그 뭔가가 작동하기 시작한다. 토요일마다 그들을 기다려주는 디렉터와 자원봉사자들의 사랑은 그들이 밀알 모임을 사모하게 하는 흡입력을 지닌다. 장애아동들이 토요일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음 밀알선교단에 나올 때를 기억한다. 대부분 유순하게 적응하는 편이지만 유난히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아동들이 온다. 중증장애에 자원봉사자 몇 명이 달라붙어도 통제가 힘든 아동들이 있다. 계속 돌아치는 아이를 따라다니다 보면 지쳐버린다. 어떨때는 폭력성이 나타나는 아이도 있고, 마음에 안 들면 자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갑자기 길가 도로로 뛰쳐나가는 경우도 간혹 있어 모두를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인내하고 조금 더 나아지기를 기다리는 곳이 밀알이고, 토요 사랑의 교실이다. 그렇게 해가 바뀌며 시간이 지나다보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적응을 못해 몇 번 나오다가 자취를 감추었는데 성장하여 다시 밀알선교단을 찾아왔을 때 확연히 달라진 모습에 놀라기도 한다. 참고 인내하며 돌보며 기다리다 보면 놀랄정도로 아이들이 변화되어 간다. 그래서 감사하고 보람을 느끼며 사역을 하게 되는가보다.
주바라기 이지선 자매 이야기이다. 꽃다운 대학생 시절, 불의의 사고로 화상을 입어 곱디곱던 외모를 잃고 오랜 기간 50차례 수술을 해야만 했던 이지선. 한때 그녀가 뉴욕에서 공부를 하던 시점에 용감하게도 뉴욕마라톤에 도전을 하게 된다. 멋지게 출발을 하였지만 36Km 지점에서 기진맥진하여 도저히 더 뛸래야 뛸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밀려오는 그 순간. 이게 웬일인가? 뉴욕 센트럴 팍 최북단에 한 한국 여성이 [지선아 사랑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화이팅!”을 외치는 것이 아닌가? 지선이가 언제 올지도 모를 몇 시간을 피켓을 들고 그렇게 기다렸던 것이다.
이지선은 그 피켓 여성을 보고 알 수 없는 힘이 올라와서 완주를 하게 되었다. 극한 고통을 견뎌내며 7시간 22분 26초 꼴찌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그 이후 피켓여성은 영영 찾을수 없었다고 한다. 이지선은 그때 ‘저분처럼 인생의 마라톤에서 지쳐 있는 사람들을 응원하며 살아야 겠다’는 다짐을 한다. 기다려야 한다.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그 사람이 큰 그릇이고 위대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