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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여행.jpg

 

 인생이 힘들고 기나긴 여정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가끔 떠오르는 추억이 미소를 머금게도 하고 잠시 현실의 무게를 덜어주기도 한다.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사랑의 색깔이 달라진다. 사람들은 그 색깔을 다시 음미하고 싶어 추억의 장소를 찾아간다. 사진첩을 둘춰보고 추억의 노래를 듣는다. 결국 나이가 들면 추억이 비타민처럼 삶의 활력을 돋구워 주는 것 같다. 설레임과 기대- 그것은 사람이 평생 포기하지 못하는 에너지인 것이다. 그 에너지가 모여 누구나 즐거움이라는 마법에 걸려드는 것 같다.

 

 양평 강상에서 갑자기 경찰 아버지가 전근을 가신 곳은 양수리에서도 더 깊이 들어가는 서

종 ‘문호리’였다. 지금이야 경춘 고속화도로가 지나가고 양수리까지 전철이 놓여있지만 그 때 ‘서종’은 멀고먼 시골이었다. 북한강 언덕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돌아가는 도로를 한참을 달려 작은 마을에 당도했다. 그곳에서 시작된 내 3학년 2학기는 참 외롭고 버거웠다. 4학년에 올라가며 내 삶의 빛으로 찾아온 것은 서울에서 부임해온 미모의 여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좋아 문예반에 들어갔고, 그렇게 글 쓰는 훈련을 받으며 내 어린 날은 풍요로워갔다.

 

 초등학교 5학년 가을, 양평군내 “글짓기대회”를 앞두고 문예반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쟁이 진행되고 있었다. 대회에 나갈 수 있는 자격은 오직 각 학년에 1명뿐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5학년 대표로 선발되는 영예를 안았다. 서운하게도 대회당일 인솔자는 다른 남자 선생님이었다. 새벽에 출발하여 두 번의 버스를 갈아탄 끝에 “양평초등학교”에 당도하게 되었다. 당일 글짓기대회에서 출제된 시어(詩語)는 “감”이었다. 내 가슴 가득히 들어있던 감성을 쏟아내어 나는 당당히 “특선”에 영예를 안게 된다.

 

 금박 봉황이 그려진 “특선 상장”과 아울러 부상으로 24색 “왕자파스”(크레파스)가 주어졌다. “이 순경 아들”은 그렇게 영웅이 되었고 상을 받던 그 환희의 순간은 노년이 되어가는 내 기억 속에 에너지로 살아있다. 얼마 후, 서울 출장을 다녀오신 아버지는 내게 ‘하모니카’를 선물해 주셨다. 교본을 들여다보며 연습에 열을 올렸고 실력이 향상될 즈음 곧잘 뒷산 바위에 걸터앉아 하모니카를 불어 제꼈다. 소나무 숲을 타고 흐르는 하모니카 선율에 세상이 다 내 것이 된 것만 같았다. 하모니카는 내가 만난 첫 악기였고 외로울 때 유일한 내 친구였다.

 

 내 생애에서 첫 번째 만난 관문은 “중학교 입학시험”이었다. 서울아이들은 무시험으로 들어가던 그때에 우리는 시험을 쳐서 중학교 문을 노크해야했다. 시험 발표가 있던 날, ‘꽁꽁’ 얼어붙은 운동장에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합격자 발표를 보기위해 모여들었다. 드디어 학교 급사들이 사다리를 타고 벽에 올라 두루마리를 풀어 붙이기 시작한다. 그때의 긴장감은 실로 오금을 저리게 했다. 우리 학교는 묘하게도 등수대로 이름을 적어 발표했다. 아니, 이게 웬일인가? 내 이름 석자 “李載哲”이 7번째로 붙어있었다. 소리를 질렀다. 함께 간 엄마와 누이는 눈물을 글썽이며 축하 해 주었다.

 

 중학교 입학 기념으로 아버지는 자전거 한 대를 선물해 주셨다. 청색 “무궁화 자전거”를 만나는 순간 나는 얼마나 행복해 했는지 모른다. 어설프던 자전거 실력은 자가용(?)이 생기면서 급작스럽게 성장해 갔고, 부실한 다리는 자전거에 올라앉으면 겁날 것이 없었다. 그렇게 만난 자전거는 양평시내를 내 안방(?)으로 만들었다. 시내를 가로질러 양평대교에 이르면 친구들과 소리를 지르며 거침없이 다리를 가로질러 다녔다. 지금도 한국에 가면 한번쯤은 시간을 내어 양평을 찾아가 중학교 시절에 자전거를 타고 누비던 그 거리에 서서 추억의 에너지를 충전한다. 고교시절에는 서울에서 임진각까지 주파를 했고, 장애는 자전거로 인해 날개를 달았다.

 

 서울에서 목회를 할 때에 주차가 어려운 상황에서 자전거는 기동성 있는 목회 도구였다. 특히 새벽예배를 인도할 때에 그 유용성이 뛰어났다. 누구나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인생의 황홀한 순간이 있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사진 한 장”쯤은 누구의 가슴에나 있다. 자꾸 멀어져만 가는 추억에 손짓을 하고 싶은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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