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야만 한다<송년>

by 관리자 posted Dec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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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밀알선교단 자원봉사자 9학년 남학생에게 물었다. “세월이 참 빠르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란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그렇구나, 세월이 안간다고 느끼는 세대도 있구나! 그러면서 그 나이에 나를 생각해 보았다. 경기도 양평중학교. 학제가 다르니까 난 2학년이었다. 요사이 중 2는 무서운 세대라고 한다. 북한이 남한을 쳐들어오지 못하는 것은 중 2 때문이라나? 그만큼 사춘기의 몸살은 세월의 흐름 속에 하향한 것이다. 물론 영악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순진무구했다. 선생님을 존경을 넘어 무서워하였고 따라서 담임선생님의 말은 절대적이었다.

 

  양평농고가 있어 중학교도 그 흐름에 따라야 했다. 가장 힘든 것은 할당된 건초를 여름방학 과제로 제출하는 것이었다. 해서 아이들은 틈틈이 풀을 베어야했다. 다리가 부실한 나는 그 숙제를 감당하는 것이 너무나 버거웠고 그 짐을 아버지가 지셔야 했다. 어릴때부터 농경사회에서 성장하신 아버지의 낫질은 능숙하셨다. 장애를 가진 아들의 숙제를 위해 아버지는 바쁜 경찰 임무를 감당하는 와중에 틈틈이 풀을 베어 뒷마당에 말려 놓으셨다. 풀을 베며 그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어쩌다 경찰복을 입고 학교에 나타나면 학교가 술렁거리게 만든 아버지였지만 아들의 숙제 앞에는 정 많은 평범한 애비였다. 옆집에 재관이는 남자 형제가 많았다. 그들은 콧노래를 부르며 합력하여 풀을 베었다. 얼마나 부러웠던지? 개학이 되면 다른 과제물도 중요하지만 교실 입구에서 건초 무게를 달던 선생님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다. 그때는 시간이 안갔다. 돌이켜보면 겨우 3년인데 그 당시에는 길게만 느껴졌다. 그러면서 속히 어른이 되고 싶었다. 우리가 중학교, 그것도 시골에서 학교를 다닐때는 제약이 많았다. 외출 시 반드시 교복을 입어야 했다. 간혹 사복을 입고 양평 시내를 거닐다가 훈육 선생님에게 발견되면 엄한 꾸중을 들어야 했고, 심하면 정학까지 맞아야 했다. 그래서 어른이 되면 그 굴레에서 벗어날 것 같았다. 특히 입학때부터 삭발을 해야 했기에 비듬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렇게 고교를 졸업할때까지 두발 자유화는 꿈같은 이야기였다.

 

  돌이켜보면 중 · 고등학교 6년이다. 그런데 그 시간이 그렇게 길었다. 공부를 해도 세월은 흐르지 않았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방학은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드디어 고등학교 졸업식. 아이들은 신이 났다. 이미 머리를 기를 만큼 기른 아이들도 있었다. 그 당시 대학예비고사를 마친 고3은 무소불위의 세력이었다. 그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졸업식 풍경은 다양했다. 밀가루를 뒤집어쓰고 달리는 아이부터, 3년간 입었던 교복을 갈기갈기 찢는 아이들. 그동안 인정사정없이 구타를 해대던 체육, 교련 선생님에 맞짱을 뜨며 달려드는 무법자들까지 있었다. 얼굴이 하얘져 줄행랑을 치던 교련 선생님이 왜 그리 가련해 보이던지. 그러면서도 후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악행(?)은 이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20대 초반에는 내 나이에 한 살을 덧붙여 사람을 만났다. 하지만 후반에 접어들며 세월은 빠르게 달음질치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나에게 아줌아 한분이 다가오더니 아저씨, 북가좌동 가는 버스가 몇 번이예요?” 물어왔다. 나는 다른 사람을 부르는 줄 알았다. 돌아보니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아저씨가 되어있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나고 목회자, 남편, 아빠의 삶을 살며 세월에는 모터가 달렸다. 그렇게 세대를 넘어가고 넘어가더니 2022년 말미이다. 2023년이 눈을 껌뻑이며 나에게 손짓을 한다.

 

이제 나이를 먹는 것이 두렵다. 옛날 어르신들이 했던 말 몸은 늙어도 마음은 청춘이란다그 말을 실감하며 새해를 바라본다. 지난 3, COVID-19 바이러스로 혼미한 세월을 보냈다. 그래도 이만한 것이 다행이고,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의 진리를 되씹는 중이다. 앞을 보면 세월이 더디가건만 뒤를 돌아보니 많이도 걸어왔다. 힘든 때도 있었고, 행복한 때도 있었다. 이제 한해가 가고 새로운 해를 맞이한다. 가야 한다. 그래도 가야만 한다. 그것이 삶이고 인생이다. 한해동안 글을 읽어준 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린다. 복된 새해 맞이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