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해돋이를 위해 산이나 바다로 향한다. 따지고 보면 같은 태양이건만 해가 바뀌는 시점에 바라보는 태양의 의미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목사이기에 송구영신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당연한 모습이요, 삶이 된 것 같다. 교회 담임 목회를 할 때는 가장 바쁜 시기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시점이었다. 그러다가 미국에 이민을 와서 맞이한 첫 성탄절. 서부였기에 눈도 없었고 나무를 휘감은 휘황찬란한 불빛만이 성탄이 가까워옴을 느끼도록 해 줄 뿐이었다. 섬기는 교회에서 신년예배를 드리고나자 남가주대학교(U.S.C.)에 유학을 와있던 영준 부부가 L.A. 북부 파사데나로 우리를 인도했다.
그 유명한 <로즈 퍼레이드>가 펼쳐진다고 하면서 말이다. 아직 먼동이 트기 전이었음에도 인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아예 침낭을 준비하고 그곳에서 잠을 잔 사람도 있었다. 어디나 볼만한 구경거리는 놓치고 싶지 않은 것이 인간의 본성일까? 새해 첫날 먼동이 터오면서 대대적인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내 생애 가장 많은 인파가 운집한 스펙터클한 광경을 그때 목격했다. 인종, 문화, 언어를 초월하여 쌀쌀한 서부의 겨울을 녹여냈던 기억이 새롭다. 이후 흩어진 사람들은 ‘로즈 볼 대학 풋볼’ 경기로 이동해 간다고 했다.
군중들이 모이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도 있고, 조용하고 사색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공연을 즐기고 분위기에 젖어 들며 행복 해 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역동적인 것보다는 사람 냄새가 나는 소규모의 교제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팬데믹을 겪으며 사람의 존재를 새롭게 의식하게 되었다. 2020년 3월. 세상은 암흑이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터부시 되는 시류가 도래한 것이다. 출근하느라 길을 나서면 도로에 차가 없다. Mall 주차장을 그득하게 메우며 차량들의 모습은 사라지고 아스팔트 바닥을 드러낸 광경은 섬찟한 느낌마저 주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예배시간 교회에 가면 만나던 성도들, 음식을 먹기 위해 찾았던 식당에서 마주치는 지인들, 마트에서 부딪히는 사람들. 반갑게 인사를 하고 덕담을 나누던 그때가 얼마나 귀한 인생의 접점인지를 그 기간에 깨달았다.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릴 때 딸들이 현관밖에 무언가를 놓아두고 겨우 열린 창문을 통해 대화를 나누다 가버린 그 날- 왠지모를 외로움과 서러움이 밀려왔다. 이내 두려움이 엄습하는 것을 감내해야만 하였다. 가족조차 가까이 할 수 없는 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코로나로 가족이 유명을 달리하였지만 제대로 된 Viewing조차 못하고 화장구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던 가족들의 아픔을 그 누구가 헤아릴 수 있겠는가?
아직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사람들을 만나며 숨통이 트이는 듯하다.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것처럼 소중한 일이 없음을 지난 3년 동안 절감했다. 언제든지 교회에 나가 기도하며 찬송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 최고의 은총임도 터득하였다. 인생들은 언제까지나 기회가 있을 것으로 착각하며 산다. 기회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다. 새해가 밝았다. 2023년. 낯설지만 풍성한 가슴 속으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성경 사무엘상 24:6은 말한다. “그는 돋는 해의 아침 빛 같고 구름 없는 아침 같고 비 내린 후의 광선으로 땅에서 움이 돋는 새 풀 같으니라 하시도다”
일출은 아름답다. 장엄하다. 자신도 모르게 희망이 솟아오르게 만든다.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 “너는 돋는 아침 빚 같을 것이요, 일출처럼 아름다울 것이다” 가슴이 뛴다. 아침에 장엄한 태양이 떠오르면 어둠, 죽음, 저주, 고통, 절망의 세력이 견디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얼굴, 성격, 보는 것의 차원이 달라진다. 정신이 맑아지고 밝아지는 것은 물론이요, 언어조차 달라진다. 어두움은 언제나 한 가지 색깔이지만 아침 빛은 영롱하고 다채롭다.
밝아온 새해 2023년! 실로 돋는 해의 아침 빛처럼 멋지게 살아가길 간절히 기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