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사람 소식으로 만나자!

by 관리자 posted Jun 19,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친구.jpg

 

 

 아이가 처음 태어나면 가정이라는 요람에서 꿈을 꾸며 자란다. “엄마, 아빠”를 부르며 입을 열고 두 분의 애정 어린 보살핌 속에서 성장 해 간다. 조금씩 커가며 만나는 것이 “친구”이다. 엄마, 아빠만 찾던 아이가 친구를 사귀게 되면 자연스럽게 부모와 분리되며 성숙 해 간다. 마치 우주선이 동체를 떨어뜨리며 상승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친구가 참 많다. 그것도 복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친구 중에서도 오래된 친구(최소한 20년 이상)들이 참 많다. 친구를 만나면 격식이 없다. 사실 친구란 만나서 무슨 소리라도 할 수 있는 사이이다.

 

 그러고 보니 인생을 살면서 참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헤어져 온 것 같다. 아버지는 경찰공무원이셨다. 계급이 높지 않아서 그랬는지 전근을 많이도 다니셨다. 친구를 사귀었는가하면 금방 이사를 간다. 전학을 가면서 친구들과 헤어질 때에 고통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을 못한다. ‘안타까움, 외로움, 슬픔, 쓸쓸함, 적막감’등. 장애가 있는 비애를 느낄 겨를도 없이 난 어디가나 친구를 사귀는 일에 온 정성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친구를 사귀지 못하면 놀림감이 되기 일수였으니까.

 

 불현 듯 교회 친구들이 생각났다. 나는 서울 제기동에 있는 <홍릉교회>에서 신앙의 싹을 틔웠다. 모 교회(母 敎會)인 셈이다. 그 당시 고등부에서 우리 학년이 가장 많았다. 남학생이 15명, 여학생이 13명, 모두 28명이나 되었다. 당시 담임 목사이셨던 故 “천정웅 목사님”은 우리 학년을 심혈을 기울여 양육하셨다. 그런 결과인지 여학생들 중에 사모가 3명이 나왔고, 목사도 4명이나 배출되었다. (분당중앙교회:최종천 목사, 신갈 교회:이광재 목사, 수원 성민 교회:임성아 목사, 그리고 필자) 신앙 교육의 위대함을 우리 친구들을 보면 실감한다.

 

 평생 한 교회에서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일단 신학을 공부한 친구들은 장성하면서 사역지를 따라 타교회로 떠나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친구들은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까운 교회로 옮겨갔다. 그렇게 헤어졌지만 우리는 끈끈한 신앙 우정을 이어갔다. 그런데 친구들을 만나는 시기가 참 재미있다. 처음 만날 때는 친구들의 결혼식이었다. 함도 져주고, 피로연도 참석하면서 만났다. 결혼 후에는 아이들을 낳기 시작 했고 “백일, 돌”때에 만나게 되었다. 거기에 부모님 회갑, 칠순 잔치를 통해 친구들과 만났다.

 

 그런데 나이가 중년에 접어들면서 친구들은 점점 바빠지기 시작하였고 만남의 회수가 뜸해졌다. 급기야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야만 겨우 만날 수 있었다. 미국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친구 아버님(어머님)이 돌아가실 때면 친구들은 변함없이 문상객으로 재회를 했다. 그날도 친구 “구자윤”이 부친 상(喪)을 당하여 친구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고교 동창이기도 한 “이명섭”이 다가와 한마디 건넨다. “재철아! 이제 우리 산사람 때문에 만나자” 그 소리에 초상집임에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채 큰소리로 웃어댔다.

 

 정말 친했던 친구인데 가만히 보니 어느 순간부터 초상이 나야만 겨우 얼굴을 보는 사이가 되었던 것이다. 다시 정리해 보면 “사람이 죽어야만 만나는 친구”가 된 것이다. 그래도 아직은 다행스러운 마음이 든다. 조금 더 세월이 지나면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 초상집에서 만나게 될 테니까 말이다. “세월이 참 빠릅니다.”라고 할 때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속도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세월이 무섭게 흐르고 있다. 까까머리 시절에 만났던 친구들, 장발에 다방 D,J. BOX곁에서 다리를 흔들며 우정을 나누던 친구들, 인생경로가 급선회하며 신학을 공부하며 사귄 친구 목사들.

 

 어느새 머리는 하얗게 희어가고, 그 많던 머리칼이 벗겨져 노년을 향해 치닫는 것을 보면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그래도 멋있게 늙어야지! 그리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사지만 전화는 이렇게 시작된다. “자∼식, 잘 지내냐?”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묵은지 친구의 너털웃음이 내 인생을 기름지게 하고 있다. 가슴이 통하는 친구가 있기에 오늘도 인생가도를 웃음 지으며 달리고 있다. 당신의 친구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