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ay After

by 관리자 posted Jun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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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매 상봉.jpg

 

   

 

 인생을 살다보면 행복에 겨워 소리치며 흥분에 들뜰 때가 있다. 그런 날들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면 좋으련만 인생은 하향곡선을 그리며 정신이 혼미해지고 삶의 무게를 지탱하기에는 너무도 버거울 때를 만나게 된다. 1983년 KBS TV에서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라는 생방송이 시작되었다. 6 · 25 전쟁의 상흔이 훑고 간지 어언 30년. 북한은 차치(且置)하고라도 ‘남한에 살고 있는 이산가족들을 찾아주자.’는 소박한 동기에서 출발을 한다. 하지만 방송은 엄청난 반응으로 5일간 밤낮으로 이어졌다. 시청률은 78%를 찍었고 500여 명의 상봉이 이루어졌다.

 

 6월 30일부터 동년 11월 14일까지 138일, 총 453시간 45분 동안 ‘각본 없는 드라마’가 연출되었다. 그때 내 나이 20대 중반. 매일 눈물로 날을 지새웠던 기억이 난다. 어쩜 그리 가족마다 사연이 기구한 지? 누나를 만나 “만세!”를 외치던 사나이. 이미 늙어버린 노모를 들쳐 업고 춤을 추며 스튜디오를 뛰어다니는 사람. 특히 허씨 남매가 만나는 장면에서 오빠 허현철씨가 “현옥아, 넌 김씨가 아니야, 허씨야! 개도 자기 이름은 아는데, 사람이 어찌 그렇게 살았어?”하며 오열할 때에 온 민족이 전쟁의 비극을 통감하며 함께 울었다. 하지만 The Day After는 침묵한다.

 

 왜 일까? 정론은 아니지만 가족이 헤어져 살았던 30년의 공백이 결코 쉽게 메워지지 않았으리라! 그것을 짐작할 수 있는 사건이 7월 3일 낮방송 중에 벌어진다. 피난 와중에 부모의 손을 놓쳐 천애 고아가 된 뒤 식모살이를 하며 어렵게 살아온 중년 여자가 가족을 찾은 뒤 "왜 나만 버렸느냐?"며 울부짖자 칠순이 넘은 고령의 모친이 충격에 못 이겨 실신한 것이다. 김동건 아나운서가 마이크를 쥔 채 응급처치를 하고 의무실에서 사람을 부르고, 타 지역 국 연결 중에 잠시 흘렸던 눈물을 미처 닦지 못한 광경 등이 그대로 TV전파를 타고 생중계되었다. 30년의 세월은 그렇게 민족의 가슴에 엄청난 응어리를 안겨놓았던 것이다. 현실에 부딪쳐 벌어져버린 이산가족의 아픔은 만남이 오히려 부담이 되는 그런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만남의 감동이 컸듯이 여운이 들려져야 하는데 The Day After는 소식이 없다.

 

 인생에 있어 결혼식처럼 자신의 생이 빛나는 경우도 드물 성 싶다. 그날은 신랑, 신부가 주인공이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웨딩드레스로 장식을 하고 멋진 턱시도를 걸치고 치장을 한다. 신랑이 입장할 때는 물론이지만 신부가 친정아버지의 손을 잡고 예식장에 들어설 때면 유명 영화배우가 부럽지 않다. 이 세상에 화려하지 않은 결혼식은 없다. 그런데 The Day After가 문제다. 화려한 결혼식만큼 현실은 그리 만만치가 않다.

 

 나는 영화배우 가운데 “강수연”을 참 좋아했다. 처음 어린이 드라마에 등장한 그녀는 청순하면서도 앙증맞은 인상이 매력이었다. 흑백TV시대에 “서울은 내 것이다!”라는 어린이 드라마는 그녀의 매력발산의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어 “고교생 일기”(1983년)로 큰 인기를 얻으며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아역 스타로 활동을 전개하던 강수연은 스크린에 진출한다. 1987년 9월 9일 제 44회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쥔다. 아시아 배우로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모두를 놀라게 한 영화계의 쾌거였다. 그때 강수연의 나이 21세였다. 문제는 The Day After이다. 너무 어린나이에 큰 상을 수상한 강수연의 인생은 그리 평탄치를 못했다. 이제 그녀도 50 문턱이다.

 

 교회이야기를 해 보자. 처음 교회의 문을 여는 “개척창립예배”에는 사람들이 많이 온다. 지인들과 친척들은 물론이요. 개척을 하는 담임 목사가 이전에 규모가 큰 교회에서 사역을 했다면 자리가 메워질 정도로 성도들이 몰린다. 축하화환이 예배당을 메우고 순서를 맡은 목사님들마다 “용비어천가”를 방불할 정도의 칭찬과 격려가 강물을 이루는 예배가 진행된다. 금세라도 사람들이 몰리며 큰 교회가 될 것만 같다. 기가 오른다. ‘정말 멋지고 귀한 목회를 해보리라!’ 저절로 다짐이 생기는 시간이다. 그러나 The Day After는 그리 녹록치 않다.

 

 그날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만남보다 지속이, 결혼식보다 결혼생활이 더 중요하다. 개척예배 보다 이후 부흥이 더 중요하다. 인생은 독파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The Day보다 Every 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