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존재

by 관리자 posted Mar 1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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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릴때는 아버지의 존재가 너무도 커보였다. 형제끼리 이방 저방을 오가며 장난을 치고 호들갑을 떨며 어수선하다가도 아버지가 퇴근을 하고 집에 오시면 일순간 조용해 졌다. 식사 중에 대화를 하면 “밥풀이 튄다”고 절제를 시켰고, 밥숟가락을 자주 놀려 입에서 ‘쩝쩝’소리가 나면 아버지의 호령이 떨어졌다. 그때는 그러려니하며 지내야 했다. 어머니도 그리 온순한 분은 아니셨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숨을 죽이며 사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퇴직을 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어머니의 기세가 등등해지기(?) 시작했다. 안 하던 말대답을 하여 어머니의 태도가 강경해질라치면 마주 상대하던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물고 어디론가 사라지셨다. 그런 모습을 보며 진정 아내의 존재가 어떠한지를 어린 나이부터 인지할 수 있었다.

 

 국어사전에는 아내를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라고 써있다. 전혀 모르던 남녀가 어느 날 만나 교제를 하게 되고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가정을 이룬다. 이것을 부부라고 하는데 생각할수록 신비롭기 그지없다. 결혼을 하면 ‘누구의 아내’라는 표식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따라 붙는다. ‘아내'란 참으로 고귀하고, 소중하며,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다. 젊을 때 깨닫는 사람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진정 아내의 존재가 점점 커져가는 것을 실감한다. 내 주위에는 아직은 젊은 나이에, 혹은 나이가 지긋하여 상처(喪妻)한 분들이 있다. 부부 동반으로 함께 만나다가 이제 홀로된 그분을 만나면 안스러운 생각이 먼저 든다. 이처럼 아내의 존재는 결혼의 햇수가 깊어질수록 절실해 지는 것 같다.

 

 ‘Happy wife, happy life’라는 글귀를 발견했다. 언뜻보면 ‘행복한 아내가 행복한 인생을 이룬다.’는 의미같지만 되새겨보면 더 깊고 멋진 뜻이 숨어있다. “아내가 행복해야만 인생이 행복하다”라는 것이다. 나는 항상 되뇌이며 산다. “행복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과 잘 지내는데 있다.” 나와 가까운 사람? 친구, 동료이전에 가족이 있고 그중에 가장 가까운 존재는 아내이다. 아내와의 관계가 무너진 사람은 그 어느 곳에서도 행복을 찾기 힘들다. 하지만 티를 안내서 그렇지 이미 정서적 이혼상태에 있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아내가 행복해야 삶이 행복하고 남편의 마음도 편안해 진다. 어느날, 아내와 함께 있는데 계속 야단을 맞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는 평소에 질문이 많다. 정말 궁금한게 많다. 그래서 사는 것이 항상 흥미로운지도 모른다. 집안에 모르던 물건이 눈에 띄고, 음식을 먹다가 맛이 색다르면 그냥 지나치거나 먹으면 되는데 나는 “이게 뭐야? 이것 어디서 났어?”라고 물어본다. 젊을 때는 상냥하게 대답해주던 아내가 이제는 조금 예민하게 반응을 한다. “지난번에 얘기해 주었잖아요? 어제도 그것 먹었잖아요?” 핀잔 섞인 반응이 되돌아 오는 것이다. 거기서 한마디만 더하면 서로가 피곤해 지기에 창밖을 응시하며 지나쳐버린다.

 

 청년시절. 기타를 치며 부르던 최희준의 “엄처시하”가 생각났다. “열아홉 처녀 때는 수줍던 그 아내가 첫 아일 낳더니만 고양이로 변했네. 눈 밑에 잔주름이 늘어 가니까 무서운 호랑이로 변해 버렸네. <후렴> 그러나 두고 보자 나도 남자다. 언젠간 내 손으로 휘어잡겠다. 큰소릴 쳐보지만 나는 공처가/ 한 세상 사노라면 변할 날 있으련만 날이면 날마다 짜증으로 지새는 마누라 극성 속에 기가 죽어서 눈칫밥 세월 속에 청춘이 가네.” 그냥 그게 노랫말인 줄 알았다. 살아보니 어쩔 수 없는 남자의 길임을 깨닫는다.

 

 남편의 운명은 아내의 손에 달려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것은 엄연한 현실이 된다. 철학자 ‘칸트’는 “남편 된 사람은 아내의 행복이 자신의 전부라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고 제시한다. 베이컨은 “아내는 젊은이에게는 연인이고, 중년 남자에게는 반려자이고, 늙은이에게는 간호사다.” 영국 속담에는 “좋은 아내를 갖는 것은 제 2의 어머니를 갖는 것과 같다. 좋은 아내는 남편이 탄 배의 돛이 되어 그 남편을 항해시킨다.”라고 했다. 가끔씩 잔소리하고 이따금 화를 내서 마음에 상처를 주고 받을때가 있지만 남편과 아내가 서로 옆에 있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가정은 행복한 가정 자체 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