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항상 평형을 유지하려는 본성을 지닌다. 때로 외부로부터 충격이 가해지며 평형상태가 무너질 때가 있는데 이 찰나에 미미하나마 다시 평형상태로 되돌아가려는 힘을 복원력이라고 한다. 복원력이 가장 중요하게 적용되는 것이 물위에 배이다. 급격한 방향 전환이나 충격에 의해 배가 기울어질때에 재빨리 그 원인을 제거하며 원래의 상태로 되돌리는 복원력이 작동되어 전복을 예방하는 것이다. 따라서 반드시 적절한 크기의 복원력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그 방법으로 빈 배의 밑창에는 평형수를 담아둔다. 이것이 배 복원력의 핵심이다.
‘평형수’란 배가 항해할 때 무게중심을 유지하기 위해 배 밑바닥이나 좌우에 설치된 탱크에 채워 넣는 바닷물을 말한다. 화물을 선적하면 싣고 있던 바닷물을 버리고, 화물을 내리면 다시 바닷물을 집어넣어 선박의 무게중심을 잡아주게 된다. 적절한 평형수로 중심을 유지한 배는 집채만한 파도나 폭풍도 뚫고 지나간다. 그러나 평형수가 없거나 부족한 배는 작은 파도나 폭풍에도 위태롭게 흔들리고 때로는 전복되기도 한다. 따라서 안전한 항해를 위한 적절한 평형수는 필수요소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인생에도 평형수가 있다. 배의 평형수가 바닷물이라면 인생의 평형수는 눈물이다. 고단한 인생을 살면서 장이 끊어지는 듯한 경험으로 흘리는 좌절과 절망, 슬픔과 아픔의 눈물이 인생의 평형수인 것이다. 눈물을 흘릴때는 처참하고 초라한 생각에 사로잡히지만 이내 삶의 평형수가 되어 내 삶의 중심을 잡아주게 된다. 이후 내성이 생기며 어지간한 인생 풍랑에도 견딜 수 있는 복원력을 발생하게 한다. 평탄한 삶이 좋아 보이기는 하지만 평형수인 눈물이 부족하기에 인생 풍랑을 만나면 추풍낙엽처럼 흔들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도종환의 시) 싯구처럼 인생은 흔들리며 피어난다. 하지만 중심을 못 잡고 흔들리다가 좀 더 심각한 풍랑을 만나면 전복되고 마는 것이 인생이다. 돌이켜 생각하기 싫을 정도의 아픔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인생의 평형수를 지닌, 복원력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평형수를 지니고 있기에 살면서 만나는 웬만한 좌절과 절망은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기게 된다.
인생이라는 먼 항로를 끝까지 안전하게 가려면 평형수를 채워야 한다. 같은 조건하에서 어떤 배는 전복되고 어떤 배는 견디는 이유는 배의 크기가 아니라 복원력의 크기 때문이다. 사람 또한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실패의 크기 때문에 죽는 것이 아니라 절망의 깊이 때문에 죽는다. 감당하지 못하는 절망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그 절망의 깊이를 스스로 정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어려운 일을 만났을때에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 역시 발생한 사건의 크기가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복원력의 차이 때문이다. 따라서 복원력의 핵심인 인생의 평형수를 채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인생의 평형수를 채워야 할까? 예고없이 수시로 찾아와서 나를 덮치는 아픔에 관해서 생각을 바꾸면 된다. ‘아~ 이 아픔 때문에 흘리는 뜨거운 눈물은 내 인생의 평형수가 되겠구나. 이 눈물이 인생의 결정적 위기에서 나를 구하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고통은 내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상처가 많은 사람이 있다. 치유 받지 못하면 우울증으로 번져힘겨운 삶을 살게 된다. 몸이나 마음이 아프면 눈물이 흐른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깊을때도, 넘어져 일어설 힘이 없을 때도, 치욕적인 배신감 때문에 눈물이 흐른다.
그 눈물을 흔쾌히 받아들여야 한다. 바로 그 눈물은 인생의 평형수가 되기 때문이다. 눈물은 인생이라는 먼 바다를 항해할 때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인생의 평형수가 되는 것이다. 울어야 한다. 울고 나면 시원해 진다. 평형수가 채워진다. 그 과정을 지나고 나면 복원력이 생성된다. 이제 다시 도전할 용기가 솟아나게 된다. 새롭게 내 인생을 펼치는 에너지가 된다. 인생의 평형수는 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