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를 탔다. 기사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뜬금없이 “자신이 자살 시도를 세 번이나 했었다”고 털어놓는다. 저으기 당황하며 이유를 물었다. “나이 어린 젊은 진상 손님들로 인해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상상이 갔다. 줄곧 대화를 나누다가 한마디하며 하차했다. “기사님 마음이 너무 착하시군요” 과거에 비하면 한국의 경제성장이나 생활환경은 세계 수준이다. 그럼에도 매일 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매일 92명이 자살을 시도해 응급실에 실려간다고 하니 실로 한국은 죽고 싶은 사람이 많은 나라인 것 같다.
“나 어떨 땐 죽고 싶어.” 10여년 전, 설 성묘를 위해 찾은 산소 앞에서 형이 뜬금없이 툭 뱉은 말이었다. “아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런 소리 하지 마.” 동생은 형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로부터 며칠 뒤, 어머니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네 큰 성(형)이 병원에 있댄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달려가 보니 이미 형은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워있었다. 그날의 기억은 동생에게 평생 후회로 남았다. 그때 형의 말에 귀 기울였다면 달라졌을까?
남은 가족들은 여전히 늘 형이 그립다. 어머니는 가끔씩 형의 영정 사진을 등에 업고 다닌다. 형이 눈을 감기 전 남긴 마지막 한마디. “엄마, 나 한번만 업어줘.” 아들의 이 말이 가슴에 맺혀서이다. 인천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이상길 씨(55)의 가족 이야기다. 그는 과거 형을 보낸 상처를 보듬으며 죽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택시기사로 살고 있다. 인천자살예방센터에서 진행하는 생명사랑택시 사업에 2018년부터 참여하고 있다. 자살충동은 순간 포착이 중요하다. 징조가 보일때에 적절한 대응을 한다면 예방효과를 나타낼 수 있다.
처음 센터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깜짝 놀랐다. 교육 내용에 포함된 ‘자살 위험 신호’ 중 상당수가 형이 했던 말과 행동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날따라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다. 비를 맞으며 한 시간 동안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날 이후 5년째 이 씨는 택시를 승객들중에 자살 위험 신호가 감지되거나 유난히 힘들어 보이는 이들에게 조용히 명함을 건넨다. 명함에는 이 씨의 이름과 전화번호, 인천자살예방센터의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그는 정신건강 전문가가 아니기에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 기관에 연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 번은 택시를 탈 때부터 유난히 행동이 조심스러워 보이던 30대 승객이 있었다. 얇은 이불이 담긴 가방을 들고 탄 승객은 누군가와 통화하면서 “나 정말 그 집에 가도 돼?”라고 묻기도 했다. 살던 집에서 나와 어디론가 가는 듯한 눈치였다. 이 씨는 승객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손님, 살다보면 힘들 때도 있고 즐거울 때도 있지요?” 그때부터 승객이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알고보니 최근 보이스피싱과 파혼을 연달아 겪고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였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 씨는 승객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은 뒤 조심스레 운을 뗐다. “지금 너무 힘드시죠. 요즘은 고민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비밀도 지켜주고 무료로 상담해주는 기관들이 있어요. 같이 한번 통화해보실래요?”
승객은 마음을 열고 이씨의 권고를 받아들였고 이씨는 스피커폰으로 인천자살예방센터에 전화를 걸어 다음 날 오전에 다시 승객이 상담 전화를 할 수 있도록 했다. 며칠 뒤 승객으로부터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는 전화를 받았고 승객에게 정신건강 전문가의 도움을 꾸준히 받아볼 것을 권유했다. 이렇게 이 씨는 매일 누군가가 보내는 작은 SOS 신호에 귀를 기울이며 살고 있다. 그는 생명을 구한다는 것이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한 순간, 살아가는 이유를 잠시 잃어버린 누군가에게 보내는 따뜻한 관심과 경청, 위로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큰 힘이라고 믿는다.
그는 “하늘에서 형이 저를 본다면 ‘야, 그때 나한테 좀 잘하지’라고 말할 것 같아요. 여전히 미안합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살라!”고 지구별에 보내셨다. 누군가 죽고 싶은 생각이 들어올 때 따뜻한 위로와 격려의 말 한마디가 꺼져가는 생명을 살릴 수 있음을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