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강 건너편

by 관리자 posted Jul 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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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마다 살아가며 잊지 못할 인연이 있다. 내 생애에 꼽으라면 단연 천정웅 목사님이다. 나를 오늘의 나로 가꾸어 준 멘토이다. 그분은 정말 건강했다. 20대 초반, 교회 청년부에서 ‘아야진’(동해 휴전선 근처 마을)으로 하기수련회를 갔던 때였다. 둘째 날 오후 모두들 바닷가를 찾았다. 그 찰라 제일 먼저 바다에 뛰어들어 능숙한 수영을 한 분은 목사님이셨다. 바닷속 깊은 곳에 들어가 고기를 잡아 올리는 모습을 보며 청년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항상 보아오던 양복 차림이 아닌 수영복을 입고 바다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니는 목사님의 모습에 청년들은 혀를 내둘렀다. 20대 혈기 넘치는 청년들이었지만 도대체 목사님을 따라 갈수가 없었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육상을 전공하신 그분은 운동에 관한 한 누구보다 뛰어난 체력과 실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분과 나는 고등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 첫 인연을 맺었다. 가을이면 교내 체육대회가 열린다. 경기의 마지막 순서이자 하이라이트는 교사와 학생회 임원 간에 릴레이 육상 경기였다. 릴레이 경기는 박진감이 넘쳐 보는 사람의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스타트하는 순간에는 아무래도 학생팀이 리드를 하게 된다. 순발력이 뛰어나고 교사들보다는 힘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주자에서 경기는 항상 뒤집어졌다. 학생 팀이 반 바퀴쯤 리드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 팀 마지막 주자에게 바통이 이어진다. 그때 소리 없이 치고 나가는 분이 교사 마지막 주자인 천정웅 목사님이셨다. 어쩌면 그렇게 발이 빠를까? 발이 안보였다면 과장일까? 어느새 학생 팀 주자를 따돌리고 결승점 하얀 테잎을 끊고 들어오셨다. 그때 터져 나오는 함성이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내가 신학을 공부하며 이제는 교수와 제자로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분은 강의 시간마다 건강에 대한 특강을 간간히 해 주는 동시에 체육대회가 있을 때마다 여전히 스타로 떠올랐다. 달리기에 관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했던 것이다. 1980년 후반. 천 목사님은 미국 서부로 이주하셨다. 산호세에서 목회를 하며, 당시 ‘다미선교회’가 주도한 시한부 종말론에 학적(學的)으로 맞서며 미국, 한국, 유럽까지 세미나를 인도하느라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래서일까? 무리가 오면서 갑자기 건강에 문제가 생겼고, 급기야 암 판정을 받게 되었다.

 

 멘토인 목사님의 병환 소식을 듣고도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당시 미국은 너무도 먼 나라였기 때문이다. 투병 중일 때 유학중인 내 신학대학원 동창 목사들이 문병을 가게 되었다. 이야기 끝에 나와 친구라고 하자 “죽기 전에 재철이 얼굴을 한번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나중에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는지 모른다. 건강하고 당당하던 목사님이 암에 걸려 야의어가는 모습이 가련해 발을 굴렀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상황이 야속해서 울었다. 그리고 몇 달 후 끝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당시 나이 49세였다.

 

 필라안디옥교회 박태동 장로님은 누구보다 건강하셨다. 82 고령에도 검도로 몸과 정신을 가다듬고 문인협회 회원으로 글을 쓰고 가까이하며 멋지게 사셨다. 무척이나 나를 좋아하던 장로님. 지난 6월 초, 함께 교제하며 “한달동안 한국에 다녀올 것이다”라고 말하는 장로님의 표정은 소년처럼 들떠있었다. 그런데 이게 어인일인가? 갑자기 쓰러져 투병을 하는가 싶더니 지난 7월 6일 유명을 달리하셨다. 소식에 접하고 진정 황망했다. 장례식에 참석하여 관 속에 가지런히 누워있는 시신을 보며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악수를 할때마다 악력에 감탄할 정도로 건강하던 분이 홀연히 떠나버리다니! 작년 가을, 안마당 감가지를 꺾어 슬그머니 안겨주던 장면이 다가오며 내뺨은 눈물로 흥건해졌다. 가만히 속삭였다. “뭐가 그리 급해서 가셨어요?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

 

 언젠가는 우리도 그 강을 건너야만 한다. 죽음의 미스터리. 사람은 언제 죽을지? 어디서 죽을지?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 언제 건너갈지 모르지만 오늘 진실하게 신앙생활하고, 손을 내밀어 이웃을 살려내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