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안하는 남자”라는 영상을 보았다. 소위 전문직에 종사하는 엘리트 총각들이 모든 것을 다 갖추고도 결혼을 안 하는 현대의 자화상을 담아낸 영상물이었다. 인물, 신장, 집안, 학력 모두 상당한 수준에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거기다가 전문직이니 연봉도 상당하다. 그런데 결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한다. 결혼을 하고 가정에 온갖 신경을 쓰고 살기보다는 나름대로의 취미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즐기겠다는 것이 그들의 지론이었다.
오래전 “간 큰 남자 시리즈”가 유행한 적이 있다. 처음에는 우스개 소리로 넘어갔는데 서서히 현실이 되어갔다. 간 큰 남자 시리즈는 이렇게 시작한다. “20대: 반찬 투정하는 남자, 30대: 아침 차려주기 바라는 남편, 40대: 부인이 야단칠 때 말 대꾸 하는 남편, 50대: 부인이 외출할 때 “어디 가느냐?”고 묻는 남편, 60대: 부인에게 “퇴직금 어디에 썼느냐?”고 묻는 남편, 70대: 부인이 외출할 때 함께 가겠다고 따라나서는 남편, 80대: 80세까지 살아서 부인 고생 시키는 남편” 이어지는 시리즈는 더 가관이다. 「부인을 똑바로 쳐다보는 남편, “돈을 어디에 썼느냐?”고 묻는 남편, 부인이 텔레비전을 볼 때 채널을 마음대로 바꿔버리는 남편, 외출하는 부인에게 “몇 시에 들어올 것이냐?”고 묻는 남편」
내가 어린 시절에 아버지는 실로 “짱”이었다. 아버지 노릇을 해서가 아니라 아버지는 그냥 아버지였다. 두렵고 범접할 수 없는 절대 힘을 가진 분이 아버지였다. 당시 남편의 횡포에 시달리던 여인의 넋두리 “남편은 너무나 가부장적이다. 내가 ‘뭔가를 가져다 달라’고 했더니, “어떻게 내게 명령을 하느냐. 엄마가 아버지에게 한 것 못 봤느냐?”며 호통을 쳤다. 다시 태어난다면 벼룩이라도 수컷으로 태어나고 싶다.” 오죽했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 그 당시에 남편은 제왕적이었다.
그러던 아버지의 위상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여성 취업 인구가 늘면서 남성 지배 문화는 급속히 수그러들었다. 80년대 이야기다. 여성의 경제력 향상은 자연스레 여성 권리 찾기로 이어졌고, 가족법 개정 문제는 민주화 운동만큼 중요한 이슈가 됐다. 아내는 이제 남성의 폭력에 가출로 맞섰다. 90년대에 늘어난 이혼은 사회적 문제로 자리를 잡았다. 유명 연예인들의 이혼은 여성들에게 ‘비뚤어진 자신감’(?)을 불어 넣기에 충분하였다. 당시 이혼한 연예인은 일단 퇴출 대상이었다. 하지만 당당하게 활동을 재개하는 연예인들이 늘어나면서 이혼은 또 다른 한국의 풍속도가 되었다.
주위를 둘러보라! 가족, 친척, 교회 성도, 이웃들까지 이혼한 가정을 만나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오죽했으면 이혼을 했을까?’라고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인내심”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초라한 초상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리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수준 이하의 남편 때문에 실망이 찾아와도 커가는 자식들은 보며 위안을 삼고 소망을 가졌다. 그 어머니의 희생으로 가족은 순수성을 지킬 수 있었다. 그 어머니의 아픈 마음을 헤아릴 길 없지만 덕분에 자녀들은 반듯하게 자라 한국 발전의 기초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가치관마저도 희미해 져 버렸다. 아내들이 자신의 권리와 자유에 대해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심지어 자식보다 오로지 자신의 삶에 더 중점을 두는 세대가 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고아원에는 이제 ‘부모가 있는 고아’로 가득하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픔을 간직하고 살아온 아이들이 이제는 청년이 되어 사회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매 맞는 남편은 더 이상 뉴스가 되지 못한다. 이제 “아버지, 남편”은 아내와 아이들의 눈치를 보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인내가 없는 세상에서 남편들의 입지는 좁아만 가고 있다. 조선시대에 여자를 괄시하던 남편들의 행태가 이제 인과응보의 결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 같아 가슴이 섬뜩해 진다. 간 큰 남자라고 하기보다 “아내와 아이들을 소중히 여기는 남자”라고 칭호를 바꾸어 주기를 바란다면 너무 구차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