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팔자의 격상

by 관리자 posted Nov 2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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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 중에 사람과 가장 가까운 존재가 개일 것이다. 개는 어디에나 있다. 내가 어릴때에도 동네 곳곳에 개가 있었다. 그 시절에 개는 정말 개 취급을 당했다. 개집도 허술했고, 있다고해도 지저분하기 이를데 없었다. 개가 먹는 것은 밥상에서 남은 음식찌꺼기가 전부였다. 남은 국과 반찬이 범벅이 된 수준의 개밥이었다. 무엇을 주든 잠자코 찰지게 먹는 개를 보며 안됐다라고 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먹고 배가 부르면 녀석은 마루 끝 부엌 입구에 자리를 잡고 배를 깔고 누워 오수(午睡)를 즐겼다. 그 모습을 보며 지나가는 어른이 한마디 한다. “개팔자가 상팔자구만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함께 웃었다.

 

  닭은 고기와 달걀을 얻기 위해서 키웠고, 돼지는 시장에 내다 팔거나 고기를 먹기 위해서, 소는 그 당시 농사에 절대 필요한 요긴한 가축이었다. 개는 집을 지키라고 키웠지만 사실 놀고먹는 존재였다. 그래서 개를 두고 개 팔자 상팔자라고 했던 것 같다. 무더운 복날이 되면 온 동네는 잔치를 벌였다. 그 잔치에 희생은 견공(犬公)이었다. 족보도 없이 “×로 불리우던 녀석은 가엽게 복날 마을 사람들에게 고질의 단백질을 안기며 떠나갔다.

 

  초등학교 3학년때였다. 여름 방학이 다가오는 어느 날, 학교에 다녀와 다락방에서 곤한 잠을 자고 나온 나에게 어머니는 걸쭉한 국 한그릇을 내어 밀었다. 냄새가 이상해서 안 먹으려고 하니 진한 육개장이라며 먹기를 재촉했다. 위에 기름도 둥둥 떠있고 국 색깔도 너무 진해서 구미가 당기질 않았다. 숟가락으로 한술 떠 먹다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우리 어머니는 경주 최이다. 눈을 치뜨며 어서 먹어억지로 국을 먹어야 했다. 희한하게도 이후, 미안하지만 그것(?)의 매니아가 되었다.

 

  영주권을 받고 한국에 나갔다. 지인들이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물어오길래 그것(?)이라고 대답했다. 정말 맛이 있었다. 한국 여정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딸들이 물어왔다. “아빠, 그것 먹었어요?” “그럼아이들이 눈을 흘기며 아니, 우리 집에 쵸코(강아지)를 키우는데 그것을 먹어요?”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쵸코는 쵸코고, 그것은 그것이지?” 며칠동안 뾰로통해서 말도 안 걸어 왔다. 내 참. 이제 그것을 먹는 사람은 야만인중에 야만인 취급을 받는다. 이제는 <개 식용 금지법>이 국회에 상정되어 통과되면 2027년부터 시행된다고 한다.

 

  도라지 뿌리는 절대로 산삼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그 도라지가 산삼이 될 수도 있는 세상이 되었다. 지난 봄, 필리핀 선교지를 방문하였다. 우리나라 70년대처럼 동네 곳곳이 진정 개판이었다. 커다란 개들이 목줄도 없이 자유롭게 노닐고 있었다. 정말 많기도 많았다. 사람뿐 아니라 개도 태어나길 잘해야 한다. 개대접이 선진국, 후진국을 가름하기 때문이다. 우리집에 쵸코가 온지도 어느새 14년이다. 사람 나이로 치면 ‘80’ 고령이란다. 내가 개를 나무랄라치면 아이들이 말한다. “아빠, 쵸코가 아빠보다 나이가 더 많아요기가 막혀 헛웃음만 나온다.

 

  마루 밑이나 부엌 바닥에 뒹굴던 개가 이제 침대에서 함께 잠을 주무신다. 음식도 고급사료만 드시고, 조금 몸에 이상이 생기면 병원에 모이고 가느라 북새통을 떤다. 지난달에는 계단을 오르다가 발이 삐끗하여 기브스를 하고 고생을 하셨다. 개를 발로 찼다간 학대했다는 죄목으로 벌을 받거나 벌금을 내야 합니다. 마루에 올라올라치면 빗자루로 흠씬 두들겨 맞던 신세였는데 말이다. <TV 동물농장>에 간간히 출연하던 개들이 개는 훌륭하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프로에서 인기가도를 달리고 있다. 개가 훌륭하다니!

 

  흔히 쓰는 말에 는 하찮은 것, 가치가 없는 것에 대명사였다. “개밥신세” “개복숭아, 개살구, 개버섯” “개 같은 ×” “×자식한국인들이 쓰는 상스러운 말에는 꼭 개가 들어갔다. 망신 중에도 제일가는 망신을 두고 개망신이라 했다. 그런데 요사이 신세대들이 쓰는 말에 개가 격상되어 표현되고 있다. ‘개똑똑’ ‘개이뻐’ ‘개쩔어라고 표현하면 외모, 아이큐, 인격이 최상이라는 뜻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마루 밑에 졸고 있는 녀석이 아니라 사람의 인격 속에 파고든 견공들의 위상이 진정 개팔자 상팔자가 된 세상이다. 이러다가 개보다 못한 인간이 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