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세월이 흘러 2023년의 끝자락이 보인다. 한해가 저물어감에 아쉬움이 밀려오지만 마음이 서럽지 않은 것은 “크리스마스”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크리스마스”는 기독교의 축제날이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높고 높은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을 찾아오신 복된 날인 것이다. 하지만 이제 크리스마스는 신자들보다 세상 사람들이 더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날이 되어버렸다. 그날의 의미도 모른 채 말이다.
누구나 크리스마스에 대한 추억이 있다. 깊은 산골짝에서 성장한 분일수록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아스라한 성탄 장면들이 너무도 많다. 가난하던 시절에 교회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따뜻한 난로’부터 ‘풍금’. 그리고 주일마다 나누어 주는 ‘학용품’은 아이들에게 꿈을 주었다. 크리스마스 때에는 조금 더 푸짐한 선물이 준비되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에 처음으로 교회에 가서 받은 것이 음악 공책이었다. 오선지가 그려진 음악 공책이 너무 아까워서 쓰지 못하고 고이고이 간직해 두었던 웃지 못할 기억이 있다. 예배당 종소리는 눈 덮인 시골 동리 곳곳에 평화로움을 전달 해 주었다. 크리스마스이브가 되면 우리들은 누가 “가자” 소리를 한 적도 없는데 예배당으로 향했다. 귀마개나 장갑도 없이 방울 털모자 하나 뒤집어쓰고 언덕배기 예배당에 올라갔다. 그 추위에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고르땡(골덴) 바지 덕분이었다.
“♬ 탄일종이 땡땡땡 은은하게 들린다 저 깊고 깊은 산골 오막살이에도 탄일종이 울린다.♬” 시골 교회당에서 여선생님이 눌러대던 풍금소리에 맞추어 우리는 찬송을 불렀다. 이어진 연극 시간에 어설프지만 마리아와 요셉, 동방박사를 연기하던 아이들이 왠지 커보였다. 집으로 향하기 전 선물을 나누어 주는 선생님을 향해 우리는 “저요. 저요!”를 외쳐댔다. 그렇게 믿음도 없이 교회에 드나들던 악동들은 이제 세월이 흘러 머리에 흰 꽃이 내려앉는 나이가 되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마음에 그린다. 고교시절 키타를 치며 즐겨 부르던 팝송이 “White Christmas”였다. 가사는 이렇게 시작된다. “♬ I'm dreaming of a white Christmas Just like the ones I used to know.(올 크리스마스에는 눈이 내렸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전에 그랬듯이 올해에도 말이예요.) 눈은 사람에게 신비감을 안기어 준다. 눈이 오면 어린아이와 강아지가 제일 좋아하는 것을 보면 눈은 사람을 순수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는 것 같다.
‘눈’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Love Story”이다. 고교시절 영화 “Love Story”를 보면서 동화 같은 사랑을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 영화 속 장면 중에 음악 ‘snow frolic’(눈 장난)이 깔리면서 주인공들이 눈밭에서 마구 뒹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하얀 화면과 눈이 하나가 되어 스크린과 영화의 장면이 혼동되는 명장면이 연출된다. 촬영한 장소가 뉴욕 ‘Central Park’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뉴욕은 세계 젊은이들이 사랑을 꿈꾸는 도시로 급상승하게 된다.
2023 크리스마스이다. 젊은 날처럼 들뜨지 않아도 쏟아지는 눈발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한해를 반추해 보고 싶다. 지난 한해를 디뎌온 내 발자욱을 조용히 점검하면서 잠시 후 내 곁에 다가와 옆구리를 ‘슬쩍’ 찔러댈 2024년을 미소로 반기고 싶다. 금년 한해도 매주 칼럼을 써서 올렸다. 그 세월이 어느새 20년이다. 놀랍고 감사하다. 어쩌다 마주치는 분들이 마치 연예인을 만난 듯 놀라며 “목사님이시지요? 글 재미있게 잘 읽고 있어요”라고 인사를 건네 올때면 보람을 느끼며 응대한다.
목사지만 목사의 냄새를 풍기지 않는 글을 쓰려 애를 쓴다. 일단 모두에게 부담없이 읽혀지는 글이 되고 싶어서이다. 글을 쓰며 먼저 내가 행복하다. 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의 가슴에 그 행복이 번져갔으면 싶다. Merry Christmas! “크리스마스에 눈이 올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