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3D로 살라!

by 관리자 posted Dec 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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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3D 시대가 열렸다. 3D란 “Three Dimensions, Three Dimensional”의 약자로 수학에서 공간 내에 있는 점 등의 위치를 나타내기 위해 필요한 축의 개수를 말한다. 평면에 포함된 한 점의 위치를 지정하는 데에는 두 개의 숫자가 필요하다. 따라서 평면은 2차원이다.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의 위치를 묘사하는 데에는 ‘고도’라는 또 하나의 변수가 필요하며, 따라서 비행기의 위치는 3차원 공간에 표시할 수 있다.

 

 점과 점을 연결하면 선이 되는데 이처럼 직선으로 다니는 환경을 1차원 세계라고 한다. 직선에서 점 하나를 더 연결하면 선과 선의 만남이 면이 되고, 이렇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목적지를 갈 수 있는 환경이 2차원의 세계이다. 면과 면을 연결하면 공간이 생기는데 비행기를 타고 공중에 오르거나 잠수함을 타고 바다 밑을 들어가는 3차원의 세계가 열린다. 사람의 생김새가 비슷하더라도 그 생각의 차원을 통해 삶의 수준이 결정된다.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살펴보자.

 

 시키는 것만 실행한다면 가장 단순한 1차원적인 사람이다. 2차원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목표를 이루는데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며 고심한다. 연구한다. 3차원적 사고를 가진 사람은 공간을 뛰어 넘어 장소나 환경의 제약을 극복하는 창의적인 삶을 살아간다. 1차원 세계에서는 ‘기억력’이 필요하다. 2차원 세계에서는 ‘응용력’이 첨가되고, 3차원 세계에서는 ‘창의력’을 필수로 한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3차원의 사고를 가져야 공동체가 발전하며 편안하다. 이 차원을 넘어서면 4차원이 열리는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단계이다. 이미 이 세계가 열렸다고 할 수 있는데 바로 놀라운 인터넷의 발전이다. 상상을 현실화하는 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과거 우리 한국은 1차원의 나라였다. 농업이나 목축이나 노동 위주로 살았기 때문이다. ‘직장과 집, 교회’ 정도로 선택의 폭이 별로 없었다. 단순하고 순수한 삶이다. 그러다가 교통이 발달되며 2차원의 삶으로 도약한다. 주로 걸어 다니던 곳을 다양한 교통수단으로 주행을 하게 된다. 이제는 3차원의 삶과 사랑이 전개되고 있다. 공간과 입체감이 교차하는 별세계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평면에서는 달리기만 할 수 있지만 공간에서는 뛰어내리게 되었다.

 

 1차원의 삶을 살면 생각이 정체될 수 있다. 하나님은 조카 ‘롯’을 떠나보내고 아파하는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권면하신다. 실패, 배신, 난관, 외로움, 아픔을 당한 그곳만 바라보다가는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2차원 세계를 사는 사람은 다양한 선택을 시도한다. 실패 후에도 고독만 이길 수 있다면 또 다른 사랑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3차원의 삶을 사는 사람은 간단하다. 핸드폰에 저장된 번호를 지워버리며 과거를 과거로 돌린다. 성경은 말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바로 그것이다. 인생의 다양한 사건 속에서 자유 해야 한다. 거기에 행복이 있다. 따라서 신앙은 내 삶을 3차원으로 끌어올려 준다.

 

 인생을 1차원으로 살면 오늘 하루의 삶에 만족하려 애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2차원에 접어든다. 과거와 현재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그 두 채널로만 인생을 중계한다. 그런데 이게 3D가 되면 미래의 내가 그 대화에 끼어들게 된다. ‘미래의 나’가 등장해서 과거의 나, 그리고 현재의 나에게 말을 거는 순간 삶의 큰 그림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껏 모범생으로 살았고, 공부도 곧잘 했고, 취직도 해서 월급을 받으며 살고 있지만 조금도 행복하지 않아. 매일 아침 눈뜨는 게 두렵다. 이대로 계속 내 삶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둬도 되는 걸까?”

 

 그때 ‘미래의 나’는 엄마처럼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다가온다. “무슨 걱정이 그렇게 많니? 나가서 하고 싶은 걸 맘껏 해봐. 아직 무모하고 용감하고 씩씩할 때 마음 내키는 걸 다 해보는 거야. 지금은 걱정할 때가 아니라 경험할 때야. 30대의 너는 지금의 널 말릴지 모르겠지만, 중년을 넘어보니 아직 어리고 예쁠 때 더 넓은 세상에 날 던지지 못했던 게 후회 된단다.”

 

 유명한 여행자가 한말을 기억하자. “삶에서 도망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다. 여기 계속 머물러 있다가는 삶이 내게서 도망칠까 봐 떠나는 것이다.” 멋지지 않은가? 차원을 달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