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너머 별들은 빛나고 있으니

by 관리자 posted Dec 09,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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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르기만 해도 설레이는 단어가 “결혼”이다. 사랑해서 만나고 영원히 헤어지기 싫어 결혼을 한다. 신혼에 행복하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 환상을 꿈꾸며 가정을 꾸미지만 신혼의 단꿈이 사라지고 결혼이 차디찬 현실로 다가 올 때에 부부는 좌절한다. 그 깊은 골을 극복하지 못하면 결혼생활은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한때는 부스스한 그의 머리칼이 순수해보여서 좋았는데 이제는 자신에게 닿는 손길뿐 아니라 목소리조차 듣기가 싫다. ‘저 꼴을 안보면 살 것 만 같다’는 생각에 다다르며 이혼으로 방향을 잡는다.

 

 결혼은 이벤트가 아니다. 기나긴 생의 과정이다. 성경 고린도 13장을 “사랑 장”이라 부른다. ‘사랑은 오래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말한다. 4절에 ‘오래 참고’는 영어로 ‘long suffering(오래 아파하는 것)’이다. 의미가 있다. 오래 아파하지 않고는 참사랑의 샘물을 길어낼 수 없다. 결혼은 거의 다른 사람과 만난다. 성향도, 자라온 배경도, 취미도, 성격도, 심지어 식성과 잠버릇까지 판이하게 다르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아픔”의 과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결혼은 보이지 않는 목적을 향해 계속 움직인다. 산꼭대기를 오르기도 하고 가파른 낭떠러지를 만나기도 하며, 때로는 망망한 바다와 세찬 물줄기를 건너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 여정을 무사히 마쳐야만 진정한 사랑의 나라에 도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사랑이 뜨거워지면 상대의 약점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사랑이 불붙는 시기를 ‘애정기’라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허니문’, 즉 「꿀맛 같은 시기」라고 했고, 우리나라에서는 ‘깨가 쏟아지는 시기’라고 표현한다.

 

 한창 깨가 쏟아지는 애정기에는 그 사랑의 깨가 일생동안 쏟아질 것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사랑의 깨를 다 쏟아내고 나면 그 후유증은 무섭게 다가선다. 시골에서 깨를 털어 본 사람은 안다. 베어 낸 깻단을 가을볕에 잘 말려서 막대기로 ‘툭툭’ 털어내면 깨가 한꺼번에 다 쏟아져 나온다. 인간의 사랑도 이와 같다. 물 불 가리지 못하던 애정기가 지나면 서서히 배우자의 실망스러운 모습이 드러나고, ‘저런 사람과 한평생 살을 맞대고 살아갈 일이 아득하다’고 느껴지면서 “권태기”에 접어든다.

 

 그 과정을 지혜롭게 잘 견뎌내면 좋으련만 포기하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이때의 위기는 결코 우리를 괴롭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부부의 위기는 자기 성찰과 성장을 위한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극복을 위해 적응하는 동안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삶의 지평이 열릴 수 있다. 애정기의 마냥 좋게만 보이던 모습, 밉상스럽게만 보이던 권태기 시절의 모습이 “부부애”라는 큰 그릇에 용해되어 아름다운 사랑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배우자의 참 모습은 권태기에서 쏟아지는 여러 번의 소나기가 지나고 난 후에야 비로소 알 수 있다.

 

 깊은 어둠 뒤에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듯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을 새로운 감동으로 맞이할 수 있다면 이것이 참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그런데도 많은 부부들은 이런 참사랑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결혼생활을 지루하게 지속하거나 파경으로 끌고 간다. 사랑은 감정에서 출발하지만 이후로는 의지로 지속해 가야한다. 행복한 결혼생활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지루하고도 힘든 여정을 동반한다. 수십 수백 번의 소나기를 지나고 세찬 파도를 넘은 자만이 천국에 다다를 수 있다. 이 삶의 신비가 있기에 우리는 이렇게 노래할 수 있다.

 

 『하나의 깨어진 꿈은 모든 꿈의 마지막이 아니다. 하나의 부서진 희망은 모든 희망의 마지막이 아니다. 폭풍우와 비바람 저 너머로 별들은 빛나고 있으니 그대의 성곽이 무너져 내릴지라도. 그래도 다시 성곽 짓기를 계속하라. 수많은 꿈들이 재난에 무너져 내리며 고통과 상한 마음이 세월의 물결 속에서 그대를 넘어뜨릴지라도 그래도 믿음에 매어 달리라. 그리고 그대의 흐르는 눈물 속에서 새로운 교훈을 배우기를 힘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