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初心) 지키기

by 관리자 posted Dec 2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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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막 입학한 신학생들의 모습을 꼬집는 ‘조크’가 있다. 처음 입학하면 목사처럼 산다. 처음 신학대학에 입학하던 때가 생각난다. 신기하고 두렵고 희한하고 기분이 묘했다. ‘와우, 내가 신학생이 되다니!’ 걸음걸이도, 말씨도, 마음씀씀이도 금방 목사가 된 것처럼 살았다. 2학년이 되면 전도사가 된다. 3학년에 올라가면 집사가 되고, 졸업반이 되면 평신도가 된단다. 지나가는 말처럼 들을 수도 있지만 “學文”은 가슴을 식게 만들고, “시간이 지나면 초심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지적하고 있다.

 

 초심부터 교만하거나 거창한 사람은 없다. 처음에는 다 순수하고 단순하고 소박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며 초심이 흐려지고 휘청거린다. 한국교회가 근심거리가 된 것은 초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선교사들이 목숨을 걸고 찾아와 복음을 전하던 그 순수하고 숭고한 정신을 초대교회는 그대로 이어받았다. 하지만 갑자기 성도수가 급증하고 교회가 물량주의에 빠지면서 순수한 복음은 사람들의 이권을 챙기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소위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만나보라! 개척교회 시절에는 한 영혼을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던 분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경망스럽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도 새해가 되면 목사 장립을 받은 지 어언 30년을 맞이한다. 참으로 기나긴 세월이다. 마지막 신학대학원 동창회 주소록이 도착하였다. 들춰보니 동창들의 모습이 많이도 변해있었다. 이미 천국에 간 동창이 40명이나 되었다. 세월 속에 소위 목회에 성공한 친구들도 있고, 아직도 연약한 목회를 벗어나지 못해 허덕이는 친구들도 있다. 신실한 목회태도를 견지하는 친구도 있지만 반면에 그토록 싫어하던 선배 목사들의 부정적인 모습을 답습하고 있는 친구들의 모습이 더 많음을 발견하며 놀란다. 그것이 “흐름이라”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신학생 시절의 그 순수함과 의연함을 잃어버린 목사들을 보면 웬지 마음이 서글퍼진다.

 

 눈을 감고 생각 해 보면 참 오랜 성직의 길을 걷고 있다. 22살에 신학대학의 문을 두드리고, 23살부터 교육 전도사를 시작하여 오랜 부교역자 생활, 13년의 담임 목회, 그리고 14년째 특수 목회(장애인 선교)의 길을 걷고 있으니 길다면 참으로 긴 세월이다. 대학 동창들이 필자를 보면 많이 변했다고 하겠지만 감사한 것은 나 스스로 나를 보면 그리 변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솔직히 필자도 목회에 대한 엄청난 비전과 야망(?)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

 

 목회의 진정한 의미가 희석되어 가고 있을 때 하나님은 나를 미국으로 부르시고 장애인으로 장애인 선교를 시작하게 하셨다. 장애인 사역을 하며 내가 받은 축복은 “초심을 회복하였다”는 것이다. 기나긴 날 장애 때문에 실망하고 좌절하던 세월들이 오늘 여기에 세우시기 위한 그분의 섭리였음을 깊이 깨닫는다. 2003년 7월 10일. 아무 연고도 없는 필라델피아에 와서 밀알선교단 장애인들과 첫 인사를 나누던 날. 기대에 찬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던 장애인들의 눈동자를 또렷이 기억한다. 장애인 선교에 첫 인연을 맺던 그 순간을 잊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며 살고 있다.

 

 장애인들의 가슴에 복음을 심는 일, 장애 때문에 힘들게 사는 분들에게 소망을 심고 웃음을 주는 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최선을 다해 그 손을 잡아주는 일등. 그런 일들을 감당하며 예수님의 마음을 읽는다. 그러면서 깨닫는 것은 “하나님은 낮은 곳에 계신다.” 참 평화는 낮은 곳에 계신 그분을 만날 때에 주어진다. 초심은 베들레헴 마굿간에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초심을 잃어버리는 순간부터 방향성을 상실한다.

 

 나는 가끔 공동묘지(Cemetery)에 차를 몰고 들어갈 때가 있다. 고요하다. 이 가운데는 실로 탁월한 생을 살다간 분들이 허다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기척 없이 누워만 있다. 이것이 인생이다. “언젠가는 가야하는 것을 아는 사람”은 초심을 잃지 않는다. 초심을 지키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 남들은 나를 만나면 ‘힘든 일을 한다.’고 하지만 아니다. 장애인들의 환한 미소에 매료되어 보라! 그러면 나처럼 고백할 것이다. “사는 것이 맛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