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쳐 지나간 사람들 속에 내 모습이 있다

by 관리자 posted Jan 2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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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jpg

 

 

 인생을 길게 살아왔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린 시절에 만나 긴 세월을 여전히 만나는 사람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는 사람들. 그립고 사랑해서 만나는 사람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만남의 형태는 다양하다. 필라에도 가만히 보면 이민 초창기에 만나 우정을 나누는 모임이 제법 있다. 하지만 모임의 뚜렷한 동기부여가 되지 못하면 그리 수명이 길지 못함도 발견하다. 그러고 보면 “이민 교회”는 타향살이를 하는 우리들에게 긴 만남을 보장해 주는 독특한 공동체이다. 모여서 예배드리고, 경조사를 함께하며 희로애락을 나누는 귀한 영적 요람인 셈이다.

 

 살아오면서 스쳐지나간 사람들이 생각날 때가 있다. 가족만 알던 어린아이가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가며 또래 친구들을 만난다. 뭐라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통하고 만남이 이어진다. 나와 비슷한 친구, 만나면 편안한 친구, 감싸주고 싶은 친구, 괜히 주는 것 없이 미운친구, 나를 챙겨주는 친구, 다양한 친구관계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더욱 끈끈해진다. 돌이켜보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음에도 돈독해 질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뿐 아니라 또한 아무것도 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린 시절의 친구들을 회상하기에는 세월이 너무 흘렀고 한국에 나가 스스럼없이 만나는 친구는 고교동창생들이다. 만나면 여전히 욕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되뇌이고 되뇌어도 고교시절의 추억은 샘이 솟는다. 그만큼 순수했고 무모했으며 돌발적이었다. 그러고도 버젓이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 잘 키워 출가시키고 교회에서 중직을 맡아 충성하는 것을 보면 삶은 역시 신비이다. 고상하고 신사적이었던 선생님은 이미 잊혀진지 오래고 지독하게 괴롭히고 독하게 굴던 교련선생님의 이름 석자는 우리들의 입에서 저절로 터져 나온다. 음악시간이 되면 그분은 미소를 지으며 교실로 들어섰다. 어떻게 극대극인 “교련과 음악”을 동시에 가르쳤는지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친구들의 모습에 내가 있다.

 

 한때 가까웠던 사람이 멀어져간다. 나란하던 삶의 어깨가 조금씩 멀어지더니 어느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특별한 일이 생겨서라기보다 특별한 일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어그러졌다기보다 마음을 맞춰 함께 있는 것이 더 이상 즐겁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다 만나면 서로 속내를 펼쳐 보이는 대신 겉돌고 맴도는 이야기만 하다 헤어졌다. 만남이 뜸해지며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지 못한 채 멀어져 갔다. 실망과 죄책감이 찾아오지만 대단한 잘못을 한 것은 아니기에 쉽게 잊는다.

 

 자꾸만 바란다. 그래서 실망한다. 누구에게든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기대려고 했고 바라고 있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모두 내어주지 못했다. 그래서 늘 외로웠다. 그렇게 시간을 흘러가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쳐 지나갈 것이다. 언제쯤 ‘만남과 이별’ 모두에 익숙해 질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보내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떠나간 이들, 떠나보낸 이들, 문득 그리워진다.

 

 지금까지 스쳐지나간 사람들 중에 정말 독특하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좋은 경험이었다. 그 사람 때문에 세상 물정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사람 때문에 목회가 무엇인지를 절감할 수 있었다. 왜 신학대학 교수님이 “사람을 조심하라”고 했는지 깨닫게 해 주었다. 오히려 내가 단단하고 신실한 목사가 되도록 그 사람이 스승 역할을 해 주었던 것이다. 때론 고맙고 미안하다.

 

 이제야 안다. 나를 스쳐지나갔던 사람들 속에 내가 있었던 것을. 마음속에서만 맴도는 외침이 아니라 나를 빠져나와 상대의 가슴에 가 닿을 수 있었던 만남. 내 주변에서부터 시작해 이제는 지구 전체로 퍼져감을 깨닫는다. 그리고 다시 내 심장에 와 닿는다. 이 세상에 아파하지 않은 인생이 있을까? 내가 그 사람 때문에 아파했다면 그 사람은 나 때문에 더 힘들어 하지 않았을까?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행복했다면 그 사람도 나 때문에 행복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