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많은 것이 있겠지만 웃음이 아닐까? 웃음처럼 삶을 부드럽게 해 주는 윤활유도 드물다. 웃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웃는 얼굴은 아름답다. 인간은 일생동안 50만번 정도를 웃으며 산다고 한다. 어린아이는 하루 평균 400번을 웃는다. 하지만 성인이 되면 하루 평균 8번 정도 웃는단다. 서글프다.
웃음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의 공헌이 시대마다 있었다. 때마다 인기를 끌었던 코미디언들이 줄을 이었다. 아무래도 코미디에 원조는 장소팔 & 고춘자이다. 이제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때는 만담이라고 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마치 속사포를 쏘아대듯 주고받으며 웃음을 끌어냈다. 요즘으로 하면 랩이라 할까? 살살이 서영춘, 막동이 구봉서, 후라이보이 곽규석, 비실비실 배삼룡, 땅딸이 이기동은 나름대로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며 웃음을 안겼다.
언제부터인가? 낯선 ‘개그(Gag)’가 등장했다.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즉석에서 하는 대사나 몸짓을 뜻한다. 하지만 당시 어른들은 못마땅해한 장르였다.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익살과 위트, 재담에 행복해 했다. 실로 개그계에 르네상스가 열린 것이다. 훤칠한 인물의 주병진을 필두로 이홍렬, 김병조, 심형래, 김형곤에 이어 서세원까지 걸출한 개그맨들이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나중에는 토크쇼가 열리며 그들의 입담은 절정을 이룬다.
그 가운데 추종을 불허하는 몸동작의 소유자 개그맨 김정렬이 등장한다. 바로 ‘숭구리당당’의 창시자이다. 마치 문어 다리처럼 흐느적거리는 다리 놀림으로 하체가 힘없이 무너지는 듯한 춤을 추며 “숭구리당당 숭당당 수구수구당당 숭당당”이라는 주문을 외웠다. 당시 초등학생이라면 한 번씩은 따라 해 보는 국민적 유행 개그로 자리매김했다.
그런데 이 유행어는 원래 김정렬이 오리지널이 아니라고 한다. “청춘만세”에 출연하게 되어 이원승과 함께 도사와 제자 만담 듀오 코너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주병진이 사전에 “도사가 주문으로 써먹을 구호를 준비해 오라”고 주문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개그맨 운동회에서 조정현이 응원 구호로 “숭구리당당 숭당당 수구수구당당 숭당당”를 사용한 바 있는데 허락을 받아 탄생하였다는 일화가 있다.
김정렬은 사용 허가비로 “5만원”을 조정현에게 건네고 구호를 그대로 코너에 투입했고 이게 대박을 친 것이다. 김정렬이 밝히길 이 개그 하나로 가족을 다 먹여 살리고, 아이들 대학 등록금까지 해결하고 집과 차를 장만함과 동시에 강남에 빌딩을 두 채 샀다고 하니 놀랍다. 물론 맛깔나는 다리 춤과 가락을 맞추기 위해 하체에 아령을 매달고 연습하는 등 본인만의 어레인지를 충실하게 가한 것이 성공의 가장 큰 이유였지만, 어쨌든 이 5만원 썰은 김정렬 본인이 오리지널 구호가 아니었다며 강조하는 부분이다.
워낙 체력 소모가 심한 춤새였기에 평소에 피나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훗날 선배 이용식은 김정렬이 얼마나 춤 연습을 많이 했으면 가끔 다리가 풀려 바닥에 앉을때에도 숭구리당당 자세로 주저앉을 때가 많았다고 전했다. 2023년 4월 캄보디아에서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 서세원 장례식을 거행하는 중에 웃지 못할 사건이 벌어졌다. 영정 앞에서 김정렬이 “숭구리당당” 춤을 춘 것이다. 사연을 이렇다.
故 서세원 선배 장례식에 참석을 했는데 갑자기 개그맨 김종석이 객석에서 일어서더니 “서세원 씨가 생전에 좋아했던 숭구리 당당을 보여달라”고 제안을 하게 된다. 잠시 당황을 했다. 장례식장 정서와 안 맞는 것 같아서이다. 고민을 하다가 ‘태어나서 병 들고, 늙고, 돌아가는 게 인생의 역정이니까? 어차피 죽는다면 탄생도 기쁨, 죽음도 기쁨으로 승화시키면 안될까?’라는 생각에 숭구리당당 춤을 추었고, 그 광경을 보며 오히려 많은 조문객들은 울음을 터뜨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역시 코미디언들은 달라도 뭔가 다른 것 같다. 결국 웃음과 눈물은 하나인 것을. 웃자. 덥고 어려운 시기이지만 선배 장례 영정 앞에서 숭구리당당 춤을 추어댄 후배의 충심을 헤아려 보며 우리도 웃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