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며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세월이 왜 이렇게 빨라!” 진정 숨을 고르기 힘들 정도로 세월이 빠르게 가고 있다. 2024년을 맞이한 것이 언제던가? 벌써 상반기를 지나 7월 하순에 와 있다. 다들 “덥다”고 난리지만 8월 중순이 되면 어김없이 찬바람이 날것이고, 어느새 옷깃을 여미는 가을의 품속으로 들어가며 “춥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시점이 올 것이다. 나는 처음 미국 서부로 이민을 와서 동부에서 수십년의 세월을 지내왔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사계절이 또렷하고, 계절마다의 매력에 빠져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는 분명 24시간이다. 30일을 개월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사람마다 느끼는 감각은 천차만별이다. 아이를 임신하고 산달을 기다리는 산모에게는 시간이 더디 간다. 군대에 들어가 병영생활을 하는 병사도 마찬가지이다. 골프를 즐기는 골퍼는 시간이 잘 가지만 곁에 따라다니며 길잡이 역할을 하는 캐디가 느끼는 시간은 느리다. 아이들은 시간이 안간다고 하고, 나이 든 분들은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간다고 하소연한다.
왜 사람마다 느끼는 시간의 속도가 다를까? 미국의 신경학자 피터 맹건 박사가 시간에 대한 ‘3분 실험’을 했다. 청년, 중장년, 노년 그룹을 만들어 한자리에 모았다. 다들 눈을 감게 하고 스톱워치를 가동하며 “‘마음속으로 3분이 되었다’고 생각될 때 손을 들라”고 했다. 실제 시간과 생각하는 시간을 비교하는 실험이었다. 어떻게 되었을까? 청년들은 거의 정확하게 3분 쯤에 손을 들었다. 60대 이상 참가자는 대부분 더 긴 시간이 지난 후 손을 들었다.
나이가 드니까 체감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학교에 입학하던 때를 더듬어 보라! 입학시 등교 길은 정말 길다. 첫 출근 길도 길게 생각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보면 익숙한 길을 아무 생각 없이 금방 도착한다. 사람은 새로운 학습이나 보상과정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 전달 물질 분비된다. 외부 자극이 왔을때에 그것을 해석하기 위해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굴리게 된다. 많은 생각을 해야 하기에 실제로 외부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이다.
여행을 가거나 장소 답사를 위해 찾아갈 때는 멀기도 멀다. 하지만 돌아올 때에는 금방 도착한다. 도파민이 분비될 때에는 시간이 더디가고 모든 것이 신비롭다. 그러다가 늘 보고 듣게 되면 도파민은 분비를 멈추게 된다. 새로운 자극을 못 받으니까 그냥 흘러가는 것이다. 따라서 나이가 들면 외부 자극이 일상화되어 버리고 시간의 흐름을 빨리 느끼게 되는 것이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길게 느끼고 싶다면 일상에서 새로운 경이로움을 추구하며 살아야 한다. 곳곳에 숨어있는 새로운 것을 찾아보며 살아야 한다. 출근, 퇴근길을 새롭게 찾아본다던가? 호기심을 자극하며 살아야 한다. 사람은 익숙해 지면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또한 항상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한다. 나는 서울에서 꼬박 30년을 살다가 이민을 왔다. 서울 토박이 중 남산을 전혀 올라가 보지 않은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익숙하기에 ‘언젠가는 가봐야지’ 하면서 미루다 나이가 든 것이다. 가까이 있을수록 자주 가지 않는 습성이 사람에게는 있다.
아마 필라델피아의 명문 아미쉬 마을이나, 기독교 뮤지컬 극장 <Sight & Sound>를 전혀 가보지 않은 분들이 꽤나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얼마 전 지인과 통화하다가 “돈은 벌어서 어디에 쓰느냐? 이제 가고 싶은 곳도 가고,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살라”고 강한 어조로 말을 했더니 꽤나 충격을 받은 반응을 보였다. 그분은 실로 성실의 아이콘이다. 집과 교회, 사업장 밖에는 오가는 일이 없는 분이고, 필라에 40년을 살면서 “아미쉬 마을을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고 하기에 순간 격하게 말을 했던 것이다.
시간은 강물과 같다. 막을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는 것이 세월이다. 하지만 이 물을 어떻게 흘려보내느냐에 따라 시간의 질량도 달라 질 수가 있다. 루시 세네카는 말한다. “인간은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불평을 하면서도, 마치 시간이 무한정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자신의 시간을 점검하고 달려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