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야, 푼수야?

by 관리자 posted Jul 2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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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순수한 사람이 좋다. 순수한 사람을 만나면 살맛이 나고 삶의 도전을 받는다. ‘순진’과 ‘순수’는 다르다. ‘순진’은 사실 경험하지 않음에서 오는 풋풋함이다.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하다고 표현해야 할까? 어린 시절에는 다 순진하다. 살아온 날들이 심히 적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라날 때에는 볼거리가 별로 없었다. TV는 고사하고 라디오도 변변히 소유한 가정이 없었다. 따라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몰랐다.

 

 어쩌다 동네에 낯선 사람이 들어오면 신기해서 기웃거릴 정도였다. 따라서 순진무구, 그 자체였다. 사춘기 시절은 또 어땠는가? 조숙한 아이들이 이성에 눈을 뜰 때에도 나는 뭐가 뭔지 몰랐다. 소수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다 그렇게 성장한 것 같다. 그래서 그 시절에 즐겨 부르던 노래 가사 중에 “그때 그 눈짓이 무얼 말하는지 몰랐다.”는 표현이 많다.

 

 요사이 아이들을 보라! 나이는 어린데 아는 것이 너무 많다. 말도 너무 잘한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영악하다. 하도 보고 듣는 것이 많아서일까? 나이를 먹으며 조금씩 단계적으로 알아가야 사는 재미가 있는데 말이다.

 

 미국에 와서 살아온 날들을 되새겨보면 정말 순진했다는 생각을 한다. 몇 년 일찍 이민을 온 지인이 집에 찾아와 많은 이야기들을 해 줄때에 나는 놀란 토끼 눈을 하고 경청하였다.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말이다. 세월이 지나고 나서 그 말이 대부분 허풍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민 생활의 연륜이 쌓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순진하던 내가 이제 그 순수성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 한편 서글퍼지기도 한다.

 

 ‘순진’은 그 어감 자체가 걱정스럽다. ‘언제 누구를 만나 어려움을 당하지는 않을까?’하는 느낌이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순수’는 다르다. ‘순진’은 무지에서 오는 자연스러움이지만 ‘순수’는 경험과 위치가 달라져도 변하지 않는 삶의 태도이다. 순수한 사람을 만나면 청정지역에 온 것처럼 마음이 개운해 진다.

 

 사람은 자신이 느끼지 못하는 중에 나이나, 지위, 학력, 직업에 따라 ‘틀’이 생긴다. 그런데 순수한 사람에게는 그 선입견을 무너뜨리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럴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만났는데 그런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 때에 ‘신선한 충격’을 받게 된다. ‘순수’는 다른 말로 단순이다. 꼼수를 두지 않는다.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는다. 보이는 모습 자체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순수’는 물질과 많은 연관관계를 맺게 된다. ‘돈’이 개입되면 순수성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돈’은 다른 말로 ‘욕심’이다. 따라서 이해관계에 초연한 모습이 ‘순수’이다. 내가 항상 입버릇처럼 주장하는 말이 있다. “만나서 쓸데 있는 이야기보다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관계가 진짜 친한 사이이다.” 물론 내 지론이다. 입을 열 때마다 ‘저 사람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저런 말을 할까?’ 분석을 하며 대화를 나눈다면 너무 피곤하지 않은가?

 

 만남, 그 자체로도 에너지를 받을 수 있는 그런 만남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간다. 순수가 지나치면 ‘푼수’가 된다. 순수한 것까지는 좋은데 상황과 주위사람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는 모습이 ‘푼수’이다. ‘푼수’를 좋게 보면 ‘순진무구’가 되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전라도 말로 “푼수띠기”가 되어 사람들의 이맛살까지 찌푸리게 만들 수 있다.

 

 ‘푼수’는 주위 사람들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다. 거침이 없다. 시원시원하기는 한데 위험성이 높다.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스타일이 ‘푼수’이다. 철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상황파악이 안된다고 할까? 판단하기가 매우 어려운 존재가 ‘푼수’이다. 그런데 그 ‘푼수’ 곁에는 사람들이 꼬인다.

 

 나이가 들수록 ‘푼수’는 자신도 행복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즐거움을 준다. 따라서 ‘순수’와 ‘푼수’는 구별하기가 정말 힘들다. ‘푼수’는 정신적, 육신적으로 건강하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평판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분에게 묻고 싶다. “‘순수’예요. ‘푼수’예요?” 웃으면 당신은 ‘푼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