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곳은 가정이다. 젊은이들은 ‘저절로 이성을 만나고 저절로 하는 것이 결혼이라’는 기대감 속에 산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어느날 우연히 마주친 이성에 반해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그런 일은 드물다. 결혼 적령기가 많이 늦춰진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 아직 미혼인 사람을 보면 사람들은 안스러워 한다. “능력 있는 사람이 늦게 결혼을 한다”느니, “골드 미스”라는 미사여구를 붙여 위로하려 하지만 혼기를 놓친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유쾌하지만은 않다.
세상에 모든 것은 그 가치를 누리려면 시험을 치루어야 한다. 열심히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해야 성취의 기쁨이 주어진다. 운전의 예를 들어보자. 일단 ‘면허증’이 있어야만 한다. 면허증을 따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가? 천신만고 끝에 네모난 플라스틱에 내 얼굴이 박힌 너무도 자랑스러운 운전 면허증을 발급받게 된다. 처음에는 떨면서 운전대를 잡는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나중에는 음악을 들으면서도 운전을 하게 되고, 음식을 먹어가면서, 전화까지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운전도 그러할진대 평생을 살아가야 할 결혼에 대해서는 전혀 대비책이 없다. 공부도 안하고 준비도 없이 그냥 덜컥 가정을 꾸민다. 심하게 표현하며 ‘가라’(がら:가짜) 부부이다. 그러다보니 충격적인 현실은 그 달콤한 신혼여행이 이혼 여행이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거창한 결혼식이 끝난 후 겨우 몇 달, 몇 년이 지나면서 갈라서는 부부가 흔한 세상이 되었다.
지금 아이들은 과학적인 기물이 모든 것을 대신한다. 컴퓨터가 친구이며, 스마트폰이 만능인 세상이 되었다. 눈을 뜨면서부터 밤에 잘 때까지도 손에 쥐고 잔다. 사람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고, 사랑을 하고, 미워도 하고, 울어도 보고, 함께 웃어야 사람이 사람이 된다. 그런데 기계에 길들여져 가슴이 없는 사람끼리 부부가 되니 그 관계가 오래 갈 수 있겠는가?
기계와 게임에 익숙하던 사람이 결혼을 하면 문제가 발생 할 수밖에 없다. 기계는 내가 ‘하라’는 대로 한다. 결혼을 했다. 내가 “하라”면 상대가 그대로 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왜? 사람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 내 말을 안 듣네 이게 아닌데’ 서로가 당황 해 하며 금방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부부관계가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남편이, 혹은 아내가 ‘영’ 자기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 행복한가? 감동을 받을때이다. 음악, 영화, 예술을 그래서 사람들은 좋아한다. 감동은 사람의 마음을 여유롭게 만들며, 너그러운 사람이 되게 한다. 감동받은 사람은 그 감동을 상대에게 전이시키는 희한한 능력을 소유하게 된다. 부부가 서로 감동을 받을때에 존경심이 생긴다. 자꾸 보고 싶고, 만지고 싶어 한다. 연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신혼 때는 그것을 실감했다. 그런데 그 감동이 식으며 처절하리만큼 결혼생활은 냉각되기 시작했다.
분명히 안보면 보고 싶던 시간이 있었다. 그것이 감동이다. 그런 능력이 분명히 나에게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능력을 상실하고 빈 껍질만 남은 초라한 모습이 되고 만 것이다. 자연히 흐트러지고 우주 질서가 깨졌다. 자기가 남자인 것을 모른다. 자기가 여자인 것을 모른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조화된 균형 잡힌 그런 여자와 남자, 즉 진짜 남자다운 남자. 진짜 여자다운 여자를 만나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자라서 그렇다.
결혼은 예술이다. 예술은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예술의 목적은 “감동”이다. 감동이 없는 예술은 사람을 지루하게 만든다. 나중에는 ‘짜증’까지 유발한다. 감동이 있을때에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게 된다. 결혼이 예술이라는 것도 그런 의미이다. 예술의 경지에 이를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해야 한다. 찾아야 한다. 만나야 한다. 남자다운 남자를 만나는 것은 축복 중의 축복이다. 여자다운 여자를 만나는 것은 은총 중의 은총이다. 찾고 찾고 찾으면 만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