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이런 남자와는 도저히 함께 살 수 없다”는 40대 후반의 한 여성이 있다. 이 여성은 남편에 대해서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었다. 이야기는 아주 단순했다. 화장실에 서 남편이 소변을 보고 나가면 늘 오줌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아마도 소변을 흘렸거나 튀어서 변기에 묻어 있었던가보다.
신혼 초에는 미안해 할까봐 자기가 청소를 했단다. 그런데 아들을 낳고 키우는데 아들도 자기 아빠처럼 서서 싸고 오줌을 흘리거나 튀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탁을 했다. “소변 볼 때에 서서 말고 제발 앉아서 싸라고.” 그런데 그렇게 쉬운 부탁인데도 그것 하나 들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혼을 하겠다고 했다.
또 다른 부부이야기이다. “아내는 도대체 청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에 들어가면 현관부터 “발로 치우면서 들어 가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는 팬티를 벗어서 그냥 침대 밑에 던져 놓는다나? 어느 날은 청소를 하다가 침대 밑에서 아내 팬티가 20개 정도가 나온 적도 있다고 했다. 계절이 바뀌어 옷을 찾으면 어디에 두었는지를 모르고 또 “그냥 사서 입자” 주의라고 한다. 자기는 너무 깔끔한데 아내는 정반대라서 “이젠 갈라설까?” 생각중이라고 했다.
또 있다. “제발 씻고 자자”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그냥 자는 남편이 있다. 어디 외출을 할 때에도 미리 좀 일찍 준비해서 여유있게 나가자는 남편의 말을 무시하고 끝까지 자기 식 대로 화장하고 준비하는 여자가 있다. 남자들이 견디기 힘든 것은 아내가 자기를 무시할 때이다.
말끝마다 “당신이 뭘 알아요?”라고 하며 시도 때도 없이 남편을 구박하는 아내가 있었다. 어느 날 밤늦게 남편이 돌아오지 않아 걱정하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병원이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있으니 빨리 오라”는 연락이었다. 부인은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남편이 죽어서 하얀 천이 씌워져 있었다.
허구한날 남편을 구박했지만 막상 죽은 남편을 보니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부인은 죽은 남편을 부여잡고 한없이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는데 남편이 슬그머니 천을 내리면서 말했다. “여보 나 아직 안 죽었어” 그러자 깜짝 놀란 부인은 울음을 ‘뚝’ 그치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뭘 알아요? 의사가 죽었다면 죽은거지!”
부부를 “무촌”(無寸)이라고 한다. 언뜻 들으면 ‘아주 가깝다’는 뜻이요, ‘하나’라는 뜻이지만 부정적인 면으로 해석하면 ‘아무 관계도 없다’가 된다. 언젠가 아내와 이혼한 연예인이 TV에 나와 솔직한 심정을 토로하는 것을 보았다. “저는 아직 결혼생활을 할 만한 인격을 소유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 여자를 행복하게 해 주기에는 아직 모자란 것이 많았습니다. 준비가 될 때까지 그냥 홀로 지내고 싶습니다” 그의 마지막 멘트가 귀에 쟁쟁하다. 그렇게라도 깨달은 그 친구가 귀해 보였다.
나이가 들어도 결혼하지 않은 자매들은 거의 공부를 많이 하는 석학들이다. 남자가 아니라 학위와 결혼을 했다고 표현하면 지나칠까? 결혼은 생각을 많이 하면 불가능하다. 젊은 나이에 “콩깍지가 씌워서” 결혼을 해야 하는데 나이는 들었지, 공부도 많이 했지, 쉽게 콩깍지가 씌어 지지 않는다.
부부가 된다는 것을 공동생활을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다른 말로 하면 “부부”는 ‘서로를 위해 노력하고 애를 써야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동생활의 가장 기본은 서로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공동생활에는 반드시 규칙들이 있다. 규칙을 존중할 때에 품격이 생긴다. 규칙을 어기고 경고와 잔소리가 난무할 때에 서로가 냉소하게 되고 향기 대신에 악취가 나기 시작한다. 조잡한 부부 생활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혼, 부부 생활. 그것은 남편과 아내가 함께 만드는 공동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