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초상

by 관리자 posted Oct 2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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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가요제?” <TV 조선>에서 지난 10일부터 과거와 같은 타이틀로 경연대회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의 다양한 장르와 다채로운 창법이 놀랍게 펼쳐지고 있다. 그러면서 희미해져 가는 나의 20대가 저만치 투영되어왔다. 실로 고뇌의 세월이었다. 대학입시에 낙방하고 자연스럽게 “백수”(실업자)가 되었다. 오라는 곳도, 갈 곳도 없었다. 경희대 입구 단골 선술집에서 같은 처지에 동창들과 젊음의 초상을 그리며 낙오된 설움을 술잔에 부어 마셨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족들은 다 일을 나가고 집은 ‘텅’ 비어있었다. 늦게 일어나 신문을 펴들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읽으며 상대도 없는 중얼거림으로 논평을 한다. 그때 나의 친구는 기타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래만 불렀다. 지금도 운전을 하다가 유튜브를 틀면 그 시절에 7080 가요가 흘러나오고 아스라이 사라져 가던 추억이 안개처럼 피어오른다.

 

 어느 날, 종로 2가 “고려당”에서 만난 고교 동창은 다방 DJ를 하고 있었다. 관심을 보였더니 그 친구가 다리를 놓아 생각지 않게 다방 DJ 생활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채용이 된 것은 아니다. 거기에도 장애가 걸림돌이었다. 다방 주인이 내 아래 위를 ‘쭉’ 훑어보다가 “이 친구를 통해 연락을 할게” ‘불합격’을 그렇게 표현했다.

 

 어렵게 DJ로 데뷔하던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턴테이블 두 개에 번갈아 LP판을 작동하는 것이 그리 수월치는 않았다. 거기다가 전화를 연결해 주는 것은 고난도의 기술이었다. 평상시에 팝송에 대한 책도 많이 읽어야 했고 다분야에 음악을 들어 두어야만 하였다. DJ 초보때나 말을 많이 하지 고수가 되면 주로 음악만 틀게 되는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되었다.

 

 우리 집은 삯월세 방이었다. 문간방에는 소위 “딴따라” 생활을 하는 김기근 형이 어머니와 살고 있었다. 희한한 복장을 하고 드나드는 “딴따라”들의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형과 가끔 마주 칠 때만 이야기를 나누었지 깊은 교제를 나누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기근 형이 내 방문을 두드렸다. “재철아, 너 형 일하는 업소에 가보지 않을래?”

 

 완고한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후 그날 밤, 밤업소에 처음 발을 디뎠다. 기근 형이 쥐어주는 기타를 잡고 부른 노래가 폴앙카의 “파파”였다. 손님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나도 모르게 그때부터 밤무대 가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나중에는 명동에 대형 생맥주 홀에서 출연 가수의 대(代)스테이지 일을 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그날 출연하는 가수가 펑크를 내면 비슷한 음색으로 대신 노래를 부르는 직업이었다.

 

 내 역할은 가수 김정호 대스테이지였다. 지금도 故 김정호의 노래를 부르면 20대 초반으로 돌아간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김정호의 노래를 사랑했다. 20대 내 꿈은 자연스럽게 가수였다. 고교 동창인 최광수가 대학가요제에 라이너스란 팀으로 출전하여 “연”이란 노래를 힛트하고 있었기에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광수보다는 노래를 더 잘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목회자가 되었지만 가수 하덕규는 고교 1년 후배이다. 하덕규는 미술학도였다. 미술반에 친한 친구가 있어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들이 그림 그리는 시간에 나는 한쪽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그 당시 계획대로라면 나는 아마 가수의 길을 가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인생의 확실한 좌표를 찾지 못하고 헤매이던 내 삶을 완전히 급회전시키는 사건이 아버지의 죽음이었다. 향년 겨우 55세. 젊음을 구가하며 신명나게 살던 나의 20대는 아버지의 죽음 앞에 산산조각났다. 장례 후 담임 목사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얼마 전 글에 올린 “천정웅 목사님”이다.

 

 21살. 신학대학에 입학을 하고 오로지 성직의 길을 걸으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신학을 하기 전까지의 내 20대는 온통 회색이었다. 번민, 사랑, 고뇌 그런 단어로 점철된 시기였다. 종로, 무교동, 명동, 신촌을 누비던 20대의 초상이 흐느적거리며 다가오다가 멀어져간다. 가요제에 출전한 대학생들의 열창을 들으며 ‘나도 저런 풋풋한 시절이 있었는데…’ 상념에 잠긴다. 늙어가는 것은 그리 달갑지 않지만 그렇다고 20대로 돌아가기는 싫다. 신기루를 바라보며 목말라하던 시간이어서일까?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주어진 시간에 순응하면서 멋있게 늙어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