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일이다. 장인이 한마디 하신다. “나이 먹은 남자 신세가 비에 젖은 낙엽이야!” 무슨 말인가 했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늙수구리 해 지면서 그 말이 피부에 와닿는다. 마른 낙엽은 산들바람에도 잘 날아가지만, 젖은 낙엽은 한번 눌어붙으면 빗자루로 쓸어도 땅바닥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마른 낙엽은 땔감으로도 쓸 수 있지만 젖은 낙엽은 그야말로 쓸모가 없는 존재란 뜻이다.
우리 시대의 아버지는 절대적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능력이나 인격이 아니라 그 존재만으로 아버지는 아버지였고, 실로 하늘 같은 남편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라서인지 돌아보면 어린 아이들에게 말투도 투박하고 살갑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 같다. 아내나 아이들이 무어라고 할라치면 “어허~~” 한마디만 하면 다들 고분고분해 졌다.
그런데 아이들이 장성하면서 분위기는 서서히 역전되기 시작하였다. 한마디 하면 논리정연하게 반박해 오는 아이들의 기세에 시퍼렇던 부권은 힘을 잃어갔다. 연애 시절부터 그렇게 온화하던 아내까지 아이들과 하나가 되어 드세지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때부터 질문이 많다. 매사에 궁금한 것이 많다. 학창시절부터 나는 질문을 잘하는 학생이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더 심하다. ‘호구조사를 하느냐?’고 할 정도로 질문공세를 펼친다. 가족관계부터 고향, 출신학교, 취미, 요사이 즐겨하는 것까지. 동석한 아내는 곁에서 ‘쿡쿡’ 찔러대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그게 그렇게 좋다. 아니 행복하다. 처음 만나는 사람의 라이프 스토리를 듣는 것이 너무 재미지다.
집에 있을때도 마찬가지이다. 어느날이던가? 아내와 단둘이 집에 있는데 계속 내가 구박(?)을 받는 모습을 발견했다. 처음 보는 물건을 보고 “이거 어디서 났어?” 물었더니 “아니 그게 언제부터 있었는데”부터 누구의 안부를 물었더니 “지난번 내가 몇 번 얘기했는데” 물건을 찾아달라면 “자기가 찾으면 좋을 것을 맨날 찾아달라느냐?”까지. 처녀 때는 그렇게 친절하던 그녀가 이제 대놓고 귀찮다는 어투로 대답을 해 온다.
젊었을때는 그것 때문에 티각태각 말다툼이 오갔다. 그런데 이제는 잠잠히 입을 다문다. 해봐야 결과는 빤하기 때문이다. 남자는 나이가 들면 영락없이 비에 젖은 낙엽 꼴이 되나보다. 내 이야기를 했지만 지인들과 식사를 하다가 가정이야기가 나오면 모습이 대동소이하다. 아예 말대꾸도 안해 준단다. 그래서 나이 먹은 남편들은 다 고독하다.
지금 시대는 바야흐로 카톡방 시대이다. 가족으로부터, 친구, 모임, 취미를 공유하는 모임까지 카톡으로 소통하는 흐름이다. 나는 카톡에 1이 떠있는 것을 용납못한다. 바로바로 확인을 하고 즉각 답을 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응이 없다. 눈팅파이든지? 아니면 워낙 톡방이 많아서 체크할 시간이 없는 경우이다. 정말 시도때도 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톡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기도 한다. 나오자니 그렇고 머물자니 정신 사납다.
<은퇴 후 삶 자가진단표> 설문이 있다. ‘회사에서는 친절하지만 집에 오면 소파와 한 몸?’ ‘홧김에 아내에게 “그럼 나가서 돈 벌어오든가” 말해봤다?’ ‘주말 삼시세끼는 아내표 집밥이면 좋겠다?’등등의 문항에 은근히 미소가 피어올랐다. 3개 이하는 꽃길 은퇴, 4~7개는 황혼이혼 예비군, 8개 이상은 황혼 이혼 대상이라나?
아내는 나이가 들어서 필요한 것이 첫째 돈, 둘째 딸, 셋째 건강, 넷째 친구, 다섯째 찜질방이란다. 아들은 장가가는 순간 며느리 남편, 장모 사위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목록에 없다나. 반면, 남자에게 늙어서 필요한 것은 첫째 부인, 둘째 아내, 셋째 집사람, 넷째 와이프, 다섯째 애들 엄마 라고 한다나? 남자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오직 아내밖에 없다는 의미가 된다.
일본에서 ‘젖은 낙엽’은 은퇴한 뒤에 집에 틀어박혀 아내만 쳐다보는 남편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제 몸을 사려야 한다. 젖은 낙엽신세가 안되려면 맹탕인생을 살아서는 안된다. 나이가 들수록 꿈을 품고 자아 발전에 에너지를 써야 한다. 존재감을 뽐내면서 폼나는 노년의 삶을 꾸려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