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조회 수 51638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바람과 풍차.jpg

 

 바람이 분다. 얼굴에 머물 것 같던 바람은 이내 머리칼을 흔들고 가슴에 파고든다. 나는 계절을 후각으로 느낀다. 봄은 뒷곁에 쌓아놓은 솔가지를 말리며 흘러들었다. 향긋하게 파고드는 솔 향이 짙어지면 기분 좋은 현기증이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게 했다. 여름은 굴뚝 근처에 번져가는 곰팡이를 스쳐가는 ‘퀘퀘한 내음’으로 다가왔다. 선풍기도 없던 시절에 부채질은 더운 열기를 돋우워 잠자리를 설치게 했다. 어쩌다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에 겨우 꿈나라로 향할 수 있었다. 가을은 스산한 기운으로 오동나무 잎을 훑으며 다가섰다. 바람이 부는 대로 쏠려 다니는 낙엽 구르는 소리가 세월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겨울은 전깃줄을 타고 휘몰아치며 아이우는 소리를 내며 불어댔고, 그럴때면 우리는 온돌 깊숙이 몸을 숨겼다.

 

 바람 중에 가장 예쁜 “하늬바람”이 있다. 사실 ‘하늬바람’은 농부나 뱃사람들이 ‘서풍’을 부르는 말이다. ‘하늬’는 뱃사람의 말로 서쪽이란다. 따라서 ‘하늬바람’은 맑은 날 서쪽에서 부는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을 말한다. 습하고 무더운 ‘된마(동남풍)’에 상대되는 바람이다. 무더운 여름철에 부는 ‘하늬바람’은 말의 느낌만큼이나 실제로도 상쾌한 느낌을 주는 바람이다. 때늦은 장마가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끈적이는 습도 때문이었다. 후덥지근한 장마도 지나가며 이파리 무성한 숲길에서는 매미 소리가 요란하고, 언덕배기로 서늘한 하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어느덧 방학이 끝날 무렵이었다.

 

 뉴햄프셔 주에 있는 ‘White Mountain’ 정상에 오른 적이 있다. 방갈로를 나서자 세찬 바람은 친구의 선글라스를 허공으로 냅다 날려버렸다. 난감해 하는 친구를 향해 다른 친구가 소리쳤다. “그래도 바람을 맞는 것이 그렇게 건강에 좋단다.” 우리는 얼굴을 마주보며 웃어댔다. 바람은 때로 모든 것을 앗아간다. 미국 남부에 몰아치는 ‘토네이도’는 그동안 쌓아놓았던 모든 것을 공중분해 시켜 버린다. 태풍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태풍이 몰아치며 저 깊은 바닷 속을 휘저어놓기에 바다가 기나긴 세월의 흐름에도 청정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청춘들에게는 자신도 가누지 못하는 바람이 있다. ‘질풍노도’라고 하지 않는가? 왜 그리 쏘다녔는지? 수업만 끝나면 달려가 죽치고 앉아있던 명동 ‘케잌파라’ 3층은 지금 생각해도 아련한 추억의 창이다. 고교시절에 여름방학은 캠핑으로 시작하여 끝이 났다. ‘텐트, 코펠, 라면, 통기타, 그리고 …’. 그렇게 뒹굴고 소리치며 놀아도 지치지 않았다. 무슨 그리 할 일이 많았는지? 무엇을 하며 지냈는지? 칫솔하나로 돌아가며 이를 닦고, 악동들은 추억을 쌓느라 하루가 모자랐다. 개학을 하면 그 바람을 진정시키느라 한참을 힘들어 해야 했다.

 

 ‘가는 바람’은 약하게 솔솔 부는 바람이다. ‘간들바람’은 부드럽고 가볍게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며 ‘강쇠바람’은 첫가을에 부는 동풍을 일컫는다. ‘골바람’은 골짜기에서부터 산꼭대기로 부는 바람인데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매서운 겨울바람의 아픈 추억을 담고 살고 있으리라. ‘골바람’이 얼굴에 부딪히면 절로 눈물이 났다. 핑계 김에 서러움을 담아 울던 겨울을 잊을 수가 없다. ‘높새바람’이 있다. ‘동북풍’을 달리 이르는 말로 주로 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태백산맥을 넘어 영서 지방으로 부는 고온 건조한 바람으로 농작물에 피해를 준다.

 

 바람을 기다려 본 경험이 있는가?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면 손수 만든 연을 들고 언덕배기에 올라섰다. 달리며 놓아버린 연이 바람을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오른다. 긴 연줄이 곡선을 그리며 저만치 한 점이 되어 버렸다. 돛단배를 띄운 뱃사공이 반갑고 반가운 것이 강바람이다. 바람에 흐느적거리는 버드나무의 향연을 본적이 있는가? 한차례 소낙비가 지나간 후 바람결에 흔들리는 미루나무 잎에 ‘반짝거림’을 실눈을 뜨고 바라본 적이 있는가? 나무는 바람을 타고 잎을 흔들며 대화를 나눈다.

 

 한적한 깊은 산속 숲 소리와 바람의 빛깔을 알 수 있다면 자연의 언어인 바람을 통해 우리는 더 풍요로운 인생의 맛을 느낄 수 있으리라!


  1. 기다림(忍耐)

    현대인들은 빠른 것을 좋아한다. 무엇이든지 짧은 시간에 큰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배워야 할 것은 스피드가 아니라 기다림이다. 왜냐하면 기다림은 하나님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절대 조급하지 않으시다. 하나님의 백성...
    Views156374
    Read More
  2. 감성 고뇌

    가을이 왔는가보다 했는데 한낮에 내리쬐는 햇살의 농도는 아직도 여름을 닮았다. 금년은 윤달이 끼어서인지 가을이 더디 오는 듯하다. 따스한 기온이 고맙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가을 정취에 흠뻑 취하고 싶어 하는 감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은근히 방해가 되는...
    Views54020
    Read More
  3.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유학생 부부 모임에 초대를 받았다. 보기에도 퍽 아름답고 유익한 신앙인들의 모임이었다. 먼 이국땅에서 낮선 언어와 문화에 적응하며 사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한다. 짧은 언어로 일하면서 공부하는 유학생활은 참으로 버거운 과정이다. 같은 ...
    Views54419
    Read More
  4. Not In My Back Yard

    오래전, 버지니아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전도 집회를 인도한 적이 있다. 교회 역사만큼 구성원들은 고학력에 고상한 인품을 가진 분들이었다. 둘째 날이었던가? 설교 중에 ‘어린 시절 장애 때문에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음’을...
    Views53457
    Read More
  5. 누나, 가지마!

    KBS가 UHD 다큐멘터리 ‘순례’를 방영했다. 흐르는 강물조차 얼어붙은 영하 30도, 혹독한 추위가 찾아온 인도 라다크 깍아 지른 협곡 사이로 수행자들의 행렬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외줄 하나에 온 몸을 의지한 채 순례 길을 걷는 수행자들의 모습...
    Views53191
    Read More
  6. 글씨 쓰기가 싫다

    한국에서의 일이다. 1984년, 한 모임에서 백인 대학생을 만났다. 남 · 여 두 학생은 백인 특유의 또렷한 이목구비와 훤칠한 키로 눈길을 끌었다. 두 사람이 연인사이였는지, 아니면 그 모임에서 우연히 만난 것인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다정다감하고 ...
    Views69075
    Read More
  7. 청춘과 함께한 행복한 밤

    실로 필라에 새로운 역사를 쓴 뜻 깊은 행사였다. 언제부터인가? 필라에 살고 있는 청춘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싶었다. 복음으로 흥분시키고 마음껏 젊음을 발산하는 장(場)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오랜 날 기도하며 준비한 밀알의 밤에 막이 오르고 메인게스...
    Views56494
    Read More
  8. 고독은 가을을 닮았다

    나는 가을을 탄다. 가을만 되면 이상하리만큼 가슴 한켠이 비어있는 듯 한 허전함을 느낀다. 가을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마력이 있다. 젊은 날에는 그냥 지나치던 것들을 곰곰이 되새기게 된다. 운전을 하며 지나치는 숲속을 주시하고, 우연히 마주친 장애인...
    Views57464
    Read More
  9. 밀알의 밤을 열며

    “목사님, 금년 밀알의 밤에는 누가 오나요?” 가을녘에 나를 만나는 사람들의 물음이다. 그렇다. 필라델피아의 가을은 밀알이 연다. 15년 전,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된 밀알의 밤이 어느새 15돌을 맞이한다. 단장으로 오자마자 무턱대고 기획했던 ...
    Views50828
    Read More
  10. 넌 날 사랑하기는 하니?

    “넌 나를 사랑하니?” 아이가 태어난 이후 남편은 가끔 섭섭함을 이렇게 토로했다. “사랑하지. 아니면 왜 같이 살겠어?” 남편은 찝찝한 표정을 지으며 혼잣말을 했다. “같이 산다고 사랑하는 건가?” 나도 남편에게 섭섭함...
    Views53163
    Read More
  11. YOLO의 불편한 진실

    바야흐로 웰빙을 넘어 ‘YOLO 시대’이다. ‘YOLO’란 ‘You only live once’의 약자이다. 한마디로 “인생은 한번 뿐이다.”라는 뜻인데 굳이 죽어라고 애쓰며 살지 말고 “오늘을 즐기라”는 것이다. ...
    Views59198
    Read More
  12. 슬럼프(Slump)

    어느 주일 아침, 한 집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아들이 하는 말 “어머니 오늘은 교회에 가고 싶지 않아요?” 깜짝 놀란 어머니가 외친다. “교회를 안가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아들이 대답한다. “첫째, ...
    Views53134
    Read More
  13. 밀알 캠프의 감흥

    매년 일관되게 모여 사랑을 확인하고 받는 현장이 있다. 바로 <밀알 사랑의 캠프>이다. 그것도 건강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 세월이 어느새 25년이다. 1992년 미주 동부에 위치한 밀알선교단(당시는 필라델피아, 워...
    Views50455
    Read More
  14. 구름을 품은 하늘

    처음 비행기를 탈 때에 앉고 싶은 좌석은 창문 쪽이었다. 날아오르는 비행기의 진동을 느끼며 저만치 멀어져 가는 땅과 이내 다가오는 하늘을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그 작은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창 쪽에 앉은 사람을 부러워하며 목을 빼고 밖을 주...
    Views55190
    Read More
  15. 아내 말을 들으면…

    결혼을 하고 처음부터 아내 말에 귀를 기울여 듣는 남편은 거의 없다. 가부장적 배경 속에 서 성장한 남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여자에 대해 급을 낮춰보는 경향이 있다. “어디 여자가? 여자가 뭘?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해요!”등 흔히 들었던 소리...
    Views51892
    Read More
  16. 그렇고 그런 얘기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딸이 소리친다. “아빠, 송중기, 송혜교가 결혼한대요. 그것도 10월이라네.” “그래? 와!” 온 가족이 갑자기 두 사람 결혼소식에 수선을 떤다. 아니, 두 사람과 인연은커녕 실제로 얼굴을 마주한 적도 없는데 말이...
    Views54139
    Read More
  17. 장애인인 것도 안타까운데

    사람들이 아주 평범하게 여기는 것을 기적처럼 바라며 사는 존재가 있다. 바로 장애인들이다. 이 땅에는 장애를 가지고 힘겹게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통계에 의하면 인류의 10%가 장애인이라고 한다. ‘10명중에 한명’은 장애인이...
    Views55188
    Read More
  18. 바람이 보여주는 빛을 볼 수 있다면

    바람이 분다. 얼굴에 머물 것 같던 바람은 이내 머리칼을 흔들고 가슴에 파고든다. 나는 계절을 후각으로 느낀다. 봄은 뒷곁에 쌓아놓은 솔가지를 말리며 흘러들었다. 향긋하게 파고드는 솔 향이 짙어지면 기분 좋은 현기증이 봄이 가까이 왔음을 알게 했다. ...
    Views51638
    Read More
  19. 마음의 빗장을 열고

    한국 사람의 언어 중에 독특한 단어가 “우리”이다. ‘우리나라, 우리 학교, 우리 동네’로부터 심지어 ‘우리 아내, 우리 남편’이라고 한다. 외국사람들이 처음 들으면 기절초풍을 한다. ‘아니 아내(남편)가 저리도 ...
    Views52288
    Read More
  20. 아이를 깨우는 엄마의 소리

    새날이 밝았다. 창가로 눈부시게 쏟아지는 아침햇살이 싱그럽다. 단잠으로 쉼을 누리고 맞이하는 새아침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의 시간이다. 그런데 많은 가정들이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등교해야 할 아이를 잠자리에서 깨...
    Views5296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 35 Next
/ 35

주소: 423 Derstine Ave. Lansdale., PA 19446
Tel: (215) 913-3008
e-mail: philamilal@hotmail.com

© k2s0o1d4e0s2i1g5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