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원식당 6/23/2013

by admin posted Nov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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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뜨는_식당.jpg

 

 

세상이 많이 삭막해졌다고들 한다. 과거보다 살기가 풍요로워졌다면 당연히 사람들의 마음도 넉넉해져야 할 텐데 민심은 점점 싸늘해져만 간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여기 가슴 훈훈한 식당이 있다. “해 뜨는 식당”(광주 대인시장). 이름만 들어도 희망이 솟는 듯하다. 식당 이름만 따뜻한 것이 아니다. 음식가격이 단 ‘천원’이다. 귀가 의심스럽다. 천원이면 미화로 1불도 채 안 되는데 그 돈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니 상상이 안 간다. 천 원짜리 한 장만 내면 밥 한 공기에 된장국, 3가지 반찬이 나오는 “백반”을 맛있고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이 식당 주인은 김선자 할머니(71세)이다. 부잣집 외동딸로 태어나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았다는 할머니. 그는 1980년 금은방 사업에 투자해 실패한 뒤 자녀교육을 위해 1984년부터 보험회사에 다녔다. 이후 13년간 보험회사 소장으로 일하며 억척스럽게 살았다. 보험회사를 떠난 뒤 사기를 당해 빈털터리가 되고 10년간 간병하던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삶의 허무감이 찾아왔다. 그때 할머니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사기를 당한 뒤 헌옷가게를 운영해 번 돈과 자녀들에게 받은 용돈으로 1,000만 원을 모아 2010년 “해 뜨는 식당”을 열었다.

하지만 100명의 손님이 다녀가도 남는 돈은 단 10만 원. 자녀들이 한 달에 100만∼200만 원을 보태줬지만 적자를 감당하지 못하자 혼자 식당일을 보기 시작했다. 김선자 할머니는 “아이들이 말렸지만 따뜻한 밥 한 끼가 주는 힘을 보아오면서 포기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덕분에 겨울철 차가운 시장 바닥에 앉아 허겁지겁 끼니를 때워야 했던 시장 노점 상인들도, 일용직 노동자도, 독거노인도, 가난한 학생도, 이곳에서 세상에서 가장 싸지만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보통 손님이 많으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 지는 것이 요식업일진대 “해 뜨는 식당”은 장사가 잘될수록 적자인 희한한 식당이다. 하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식당을 운영할 수 있는 비밀이 있었다. 넉넉한 처지가 아니면서도 “매달 쌀 20kg을 직접 어깨에 메고 찾아준다는 장애청년”, “아르바이트를 해서 매달 3만원씩을 송금한다는 여고생”, “한사코 자기는 아무 것도 한 적이 없다고 손사래를 치는 대인시장의 이웃상인들” 그리고 “우연히 들렀다가 식당주인에 감동해서 다른 사람 수십 명의 식사 값을 놓고 가는 이름 모를 사람” 등등. 수많은 온정이 모아져서 근근히 천원식당이 운영될 수 있었다. 결국 천원 식당의 백반은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이 모여 만든 최고의 만찬이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사람냄새가 나던 식당의 문이 닫혀버렸다. 그것도 벌써 1년째 굳게 닫혀 있다. 왜일까? 식당 주인인 김선자(71) 할머니가 지난해 5월 대장암 진단을 받았기 때문이다. 왜 착한 사람들은 이런 시련이 많은 것일까? 이런 분들이 건강하고 씩씩하게 선한 일들을 더 많이 하셨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초기가 아니다. 암은 집요하게도 할머니의 간과 폐로 전이되어 버렸다. 이제 김선자 할머니가 다시 음식을 만들어 찾아오는 사람들을 배부르게 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소식에 접한 한 회사에서 식당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다시 식당을 개업하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세상에는 참 귀한 분들이 많다. 결국 할머니는 천원식당의 후계자를 찾아 나섰다. 후계자의 조건은 “된장국을 잘 끓이는 사람, 월 관리비 20만 원을 낼 수 있는 사람, 이윤보다는 이웃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 밥 한 끼의 기적을 믿으시는 분.”이다. 결국 네 아낙이 응시(?)를 했고 같은 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분에게 바통을 넘기기로 하였다.

기분이 좋아졌다. 세상은 아직 살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김선자 할머니가 다시 건강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해 뜨는 식당”이 다시 문을 열고 배고프고 마음이 서러운 많은 사람들에게 따스한 밥과 삶의 기운을 불어 넣어주었으면 정말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