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괜찮아. 다 모르고 그랬는걸 뭐!

by 관리자 posted Dec 01,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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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수 목사.jpg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인연이 있다. 한 순간, 한 마디의 말, 한 사람이 인생전반에 은은한 잔영으로 남아있게 마련이다. 어느 날 문득 삶을 되돌아보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그 무언가가 끊임없이 나에게 에너지를 주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고등학교 3학년, 예비고사가 끝난 직후 3을 위한 부흥회”(미션스쿨)가 열렸다. 강사는 포스가 남달랐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까만 두루마기를 입고 등단하셨는데 새하얀 동정은 목사님의 자그마한 얼굴을 돋보이게 했고, 독립운동가 같은 강렬한 인상으로 분위기를 압도하였다.

 

 약간은 허스키한 목소리가 답답함을 느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며 그분의 설교는 고3들의 가슴을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성함은 김종수 목사님태능 근처 영세교회를 담임하고 계셨다. 그 분은 목사님의 아들이었다. 곱게 자라던 그는 사춘기에 접어들며 비뚤어지기 시작하였고, 급기야 신앙을 버리게 된다. “연희전문학교”(, 연세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응원단장을 맡으면서 그는 실로 기고만장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다.

 

 그렇게 한창 세상길을 가고 있던 종수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다. 어머니가 암에 걸려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는 전갈이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를 돌아볼 여유조차 없이 향락에 젖어있었다. 결국 결정적인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 이후에야 집을 생각하게 된다. 어머니를 찾아 향한다. 그의 집은 과수원 한복판에 있었다. 배꽃이 만발한 동산을 지나 싸릿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서자 어머니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아파, 너무 아파, 주님, 주님!” 가슴이 저며 왔다. 방문을 살며시 열자 어머니는 힘겹게 고통을 참아내며 돌아누워 계셨다.

 

 “어머니, 저예요. 종수가 왔어요!” 놀란 어머니가 힘없는 눈동자로 아들을 쳐다본다. “종수가 왔다구요.” “, 아들아 네가 왔구나! 내가 너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종수가 다가가 어머니를 안는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몸이 닿아오자 아들은 오열한다. “어머니, 용서하세요. 잘못했어요. 저를 용서해 주세요.” 그때 어머니가 아들의 얼굴을 만지며 입을 연다. “얘야, 괜찮아. 다 모르고 그랬는걸 뭐.” 이 한마디에 아들은 통곡하며 방을 뒹군다. 결국 어머니는 아들의 품안에서 숨을 거둔다. 그는 목사가 되어 배꽃동산에 교회를 짓고 목회를 하게 된다.

 

 부흥회 둘째 날, 신앙부장인 내가 사회를 맡게 되었다. 설교가 끝나갈 무렵, 강사 목사님은 제가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오늘 사회를 보는 학생이 여러분을 대표하여 제 기도를 받도록 하겠습니다.” 당황하며 단에 오르자 목사님은 성경책을 펼치더니 오른 손을 성경에 올려놓으라.”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축복기도를 받았고 놀랍게도 훗날 목사가 되어 성직의 길을 가게 된다. 그 한순간의 기도가 나를 이끌어 갈 줄이야.

 

 그렇게 세월이 흘러가고 1994년 여름, <수동기도원>으로 전교인수련회를 가게 되었다. 밤늦게까지 설교를 하고 교인들을 위해 기도를 하다 보니 자정이 훨씬 넘어갔다. 배정받은 <목사관>에 들어갔다. 시즌이 피크여서인지 내 방에 누군가가 잠을 자고 있었다. 기도원 원목에게 이미 들은 바라 더듬거리며 방에 들어서는 순간 어슴프레 불빛에 비춰진 얼굴을 보고 깜짝놀랐다. 고교시절 단에 섰던 그 목사님이 그곳에 누워계셨다. 인기척에 눈을 뜨신 목사님은 그리도 그리던 김종수 목사님이셨다. “아니, 목사님. 웬일이십니까?”

 

 놀란 것은 김 목사님이셨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인사를 하니? 그것도 새벽 2시에. 그분은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설명을 듣고서야 얼마나 반가워하시던지? 이후 우리 가족은 종종 목사님 댁에 드나들며 사랑을 받았다. 우리가 도착할라치면 이미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 서계셨다. “형님, 어서 오구려!” 세상에 어리디 어린 나에게 형님이라니? 그분은 누구든 그렇게 섬기며 멋지게 사셨다. 마지막 남긴 어머니의 말 한마디를 사랑과 섬김으로 승화시키셨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목사님의 목소리와 특유의 제스처는 내 가슴에 깊이 새겨있다. 이제 한해의 말미이다. 부족하다. 실수가 많다. 돌이켜보면 후회뿐이다. 그런 우리를 향해 주님은 말씀하신다. 얘야, 괜찮아. 다 모르고 그랬는걸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