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성 이별 10/7/2013

by admin posted Nov 25,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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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대 명절인 “추석”이 지나갔다. 한국에 있었으면 고향에 가서 친척들을 만나고 끝없는 대화를 나누며 보름달의 장관을 감상했을 것이다. 성큼 커버린 조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고향 곳곳을 거닐며 세월의 흐름 속에 퇴색되어가는 추억을 더듬어 보기도 하련만 멀고먼 미국 땅에서는 전혀 명절 기분이 나질 않는다. 추석이라며 센스 있는 밀알봉사자 가운데 ‘송편’을 준비해 왔다. 장애인들과 송편을 먹으며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데 만족하였다. 다른 때는 느끼지 못하다가 명절 때만 되면 미국에 친척이 많은 분들이 무척이나 부러워진다. 달랑 우리식구들만 미국에 산다는 게 많이 쓸쓸하다.

명절만 되면 줄을 이어 고속도로를 메우는 귀성차량의 행렬을 본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발전을 해도 가족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러기에 고된 귀성길이지만 열일을 젖혀놓고 고향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명절이 되면 가슴 한 귀퉁이가 아려오는 분들이 있다. 바로 장애아를 둔 부모님들이다. 경미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 다시 말하면 통제가 가능한 아이들은 함께 동행을 해도 명절을 지내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장애가 심한 아이들은 양상이 달라진다.

장애 아동들은 일단 낯선 환경이나 사람들을 만나면 힘들어 한다. 그래서 우리 밀알선교단에서 아동들을 Care 할 때는 될 수 있으면 같은 사람, 아동이 가장 편안해 하는 사람을 봉사자로 배정한다. 차를 태우는 데는 문제가 없다. 장애아동들은 차타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고향집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장애 아동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가족이요, 친척이기에 충분히 이해는 하지만 한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상황은 부모들부터 지치게 만든다. 또한 ‘내 아이가 명절분위기를 흐트러뜨린다.’는 부담감이 밀려오며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만든다.

경기도에 있는 <장애아 단기 보호시설>에서는 부모들이 바쁠 때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씩 아이를 맡아준다. 가족들이 모이는 들뜬 명절에 여기서는 가족들이 헤어지는 장면이 목격된다. 소위 “귀성 이별”인 셈이다. 지적 장애아를 가진 “문현숙”씨는 말한다. “뛰어다니고, 소리 지르고, 머리 박고, 상동 행동하고 이러면 가족들이 별로 달가워하지는 않으세요. 사실은. 같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추석 연휴 기간에 장애아를 맡아 달라는 예약은 이미 9월 초에 마감되었다. 장애아 단기 보호시설 관계자의 말이다. “돌발 행동 같은 이런 상황들이 있을 때 부모님들이 감당을 잘 못하니까 가족들과 같이하는데 부담을 많이 느끼는가 봐요. 그래서 명절 때 많이 활용을 하고 이용을 하는 거죠.”

자녀를 맡길 수 있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장애가 심한 경우에는 맡아 주는 곳이 없어 명절이면 더없이 서럽다. “아무 데도 받아주는 데가 없어요, 우리 아들을. 전화 연락을 준다고 해놓고선 연락 온 데가 없어요.” 학부모의 하소연이다. “왜 안 받아주죠?”라는 질문에 “장애가 심해서, 돌볼 수가 없는 거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예수님은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시각장애인을 보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앞을 못 보는 것은 결코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고자 함이라”고. 그럼에도 명절이 되면 죄인처럼 살고 있는 가정이 우리 이웃에 있다.

나는 가는 곳마다 설교를 하며 외친다. “‘내 자녀가 공부를 못한다. 잘한다. 내 아이가 인물이 잘 생겼다. 못생겼다.’하는 것은 장애아동을 가진 부모님들에게는 사치로 보입니다.” 그렇다. 보통 가정에서 평범하게 누려야할 행복을 장애아동 가정에서는 기적처럼 부러워하며 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누리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깨닫게 될 것이다. 이웃을 돌아보자. 이 땅에는 나보다 더 아프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남들이 명절에 반갑게 만나 가족의 정을 나눌 때 중증 장애아 가족의 마음에는 그늘이 길게 드리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