돕는 배필인가? 바라는 배필인가?

by 관리자 posted Mar 1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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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 부부.jpg

 

 그리도 춥던 동장군의 기세가 꺾이고 따스한 봄 햇살이 스며들며 바야흐로 결혼시즌에 접어들고 있다. 남녀가 만나 달뜬 마음으로 사랑을 나누고 아예 평생을 함께하기로 선언하는 장이 결혼식이다. ‘인륜지대사’(人倫至大事)라는 말처럼 결혼은 인류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생사에 가장 크고 존귀한 경사로 꼽힌다. 결혼하는 당사자들은 물론이지만 결혼식에 참석해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모두 행복 해 한다. 젊은이들은 결혼만 하면 행복 해 질줄 안다. 결혼식이 진행될 때 신랑, 신부는 구름 위를 걷듯 마냥 황홀하다.

 

 주례하는 목사님은 열정적으로 주례사(설교)를 하지만 과연 그 말씀이 귀에 들리는 커플이 얼마나 될까? 턱시도를 입은 신랑, 순결을 상징하는 하이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 그들은 영화의 주인공처럼 환상적인 결혼식을 올린다. 그 결혼식 분위기로 평생을 산다면 얼마나 좋으랴? 부부는 결혼식이후에 부딪혀 오는 냉혹한 현실에 잘 적응해야만 행복할 수 있다. 전혀 다른 집안, 문화에서 성장한 남녀가 부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백재현이란 개그맨이 있다. 오랜 무명 생활 끝에 개그콘서트라는 프로를 통해 스타가 된다. 홀어머니를 모시고 소박하게 살아온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인기를 누리면서 형편도 좋아졌던지 33살에 늦깎이 결혼을 한다. 일면식도 없지만 많은 고생을 하다가 가정을 꾸미는 그에게 무언의 축하를 보냈다. 그런데 결혼 2년 만에 그 가정은 파경에 이르고 말았다. 이혼을 하며 그가 남긴 말이 인상적이었다. “결혼 생활을 하기에는 제가 너무 성숙하지 못 했었습니다, 기가 막힌 말이다. 이혼을 한 것은 안타깝지만 2년간의 결혼을 통해 그 정도로 자신을 성찰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대견스러워 보였다.

 

 결혼한다고 행복해 지는 것은 아니다. 결혼식이 화려하다고 결혼 생활이 아름다운 것은 더더욱 아니다. 부부 서로가 성숙하지 못하면 결혼은 삶의 무거운 멍에가 되고 만다. “차라리 혼자 살 때가 행복했다.”고 탄식하는 부부가 이 땅에는 얼마나 많은가? 마치 광야를 지나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즐겨 외쳤던 말 차라리 애굽이 더 나았다.”라고 불평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결혼을 안 하는 것 보다는 결혼을 하는 것이 훨씬 행복하다. 이것은 사람을 만드시며 하나님이 제시하신 최선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부부는 두 가지로 갈라진다. 바라는 배필, 돕는 배필. 바라는 배필은 상대의 부족한 점이 곧 불만의 요인이 된다. 그것은 그 부족한 점 때문에 나의 필요와 욕구를 채워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단지 나의 부족함, 나의 필요함을 채워주는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항상 불만 속에 살 수밖에 없으며 상대를 피곤하게 만든다.

 

 돕는 배필은 전혀 다르다. 상대의 부족한 것을 보면 그것이 바로 내가 존재해야하는 이유로 받아들인다. 또한 내가 배우자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행동한다. 그래서 배우자가 실수를 하거나 연약한 부분을 노출 할 때 그것을 위해 우리는 짝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나서 위로하며 그 부분을 보충하는 삶을 산다.

 

 돕는 배필은 실망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실수나 실패는 오히려 나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느끼고 같이 아파하고, 힘들어 하고, 함께 고통스러워하면서 극복 해 나아간다. 그리고 오래 참고 인내한다. 그것이 바로 돕는 배필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라는 배필은 실수 자체를 용납하지 않는다. 실수나 실패는 철저하게 상대방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아이구! 저런 사람을 남편(아내)이라고 살고 있으니라는 말이 수시로 튀어 나온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돕는 배필은 서로를 행복하고 풍요롭게 만들지만, 바라는 배필은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뿐만 아니라 그 배우자까지도 파탄으로 몰아넣는다는 사실을! 파릇파릇 고개를 내어미는 새싹을 바라보며 그리고 만개한 개나리를 보며 묻고 싶다. “당신은 돕는 배필입니까? 바라는 배필입니까? 아니면 아예 포기한 배필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