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벽마다 이런 고백을 하며 기도를 시작한다.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새날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 어제 잠자리에 들며 죽었다면 오늘 아침 다시 부활한 것이다. 지난밤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 다시 깨어났으니 이것이 기적이요, 은총이다. 장례식에 가서 뷰잉을 한다. 이름을 부르면 관에서 일어나 반가워 할 것만 같다. 하지만 말이 없다. 죽은 사람과 깊이 잠든 사람은 멀리서보면 구분이 안 간다. 살아있는 사람만 깨어날 수 있다. 산사람은 아침이 되면 다시 눈을 뜨며 날을 계수한다. 기지개를 켜며 하루를 시작한다.
필라는 숲이 많아서인지 새들도 많다. 새벽에 기도하다보면 온갖 희한한 소리를 내며 지저귀는 새소리에 접한다. ‘쟤네들도 기도를 하는 것이겠지?’ 새소리를 들으며 나는 주님과 깊은 영교에 들어간다. 새롭다. 행복하다. 살아있는 것이 고맙고 소중하다. 돌아보면 고비도 많았다. 아니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여정 속에 또 어떤 일들을 만날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새로이 주어진 하루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삶의 방향은 달라진다.
20대 초반에 시작한 신학과정은 무려 8년이 걸렸다.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던 내가 신학대학교를 들어가는 모습에 모두가 놀랐다. 교회에서 함께 자란 친구들, 선후배들, 나를 잘 아는 지인들. 나 자신도 놀랐으니까. 흘러가는 강물에 몸을 맡기듯 살아가던 삶이 한순간 성직의 길로 전환한다는 것은 실로 극적이었다. 처음 신학대학에 들어가 매일 경건회(신학대학에서 매일 드리는 예배)에 참석하며 결코 평범하지도 쉽지도 않은 길을 선택하였다는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앞만 보고 달렸다. 십자가와 그리스도. 그것이 내 20대의 키워드였다.
드디어 30대 중반에 담임목회를 시작했다. 만만해보이던 목회는 시간이 흐르며 그 무게가 더해갔다. 교인이 작을 때는 그것이 아쉬웠고, 교회가 부흥하자 그 수만큼 말도, 탈도 많아지는 것을 깨달았다. 사람을 대하며 받는 정신적 무게는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목회가 있을까? 처음에는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시간이 지나며 나의 부족을 절실히 깨달았다. 그래서 찾아 나선 곳이 영성수련이었다. 무던히 찾아다니던 영성수련장에서 깨어나는 체험을 했다.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라”고 당부했던 그 경험이 다가온 것이다. 내가 깨어나지 못하고 교인들을 깨우려 했던 내 모습을 비로소 발견한 것이다. 저만큼 엎드려있는 나를 내가 발견하며 밀려온 감정은 “미안함과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았다. 목사이니까 목회를 한 것뿐이지. 진정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무엇이 가장 중요한 줄도 모르고 달렸다. 주님을 위해 한다고 하면서 결국은 내 만족을 위해 이 길을 걸어왔던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많이 울었다. 미안해서, 억울해서, 나 스스로가 미워서 통곡하며 뒹굴었다. 2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장애인으로 살아온 것이 너무도 서러웠는데. 깨어나 보니 그것이 은총이었다. 살아오며 부딪쳤던 고통의 시간들이 원망스러웠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 과정이 내 삶에 꼭 필요한 일만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영성수련에 들어가면 제일 먼저 시계와 핸드폰을 맡겨야 한다. 시간개념이 사라지는 것이다. 어느 누구와도 소통을 할 수가 없다. 수련생끼리도 많은 말을 하는 것을 철저히 통제한다. 처음에는 불편하지만 곧 자유함이 찾아온다.
수련 중에 한밤중 밖으로 나갔더니 둥근달이 떠있었다. 너무도 아름다워서 바라보다가 가슴에서 뭔가 욱하고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미안함과 부끄러움이었다. 소중한 성도들을 소중하게 대하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이었다. 나는 어느 날 지구에 왔다. 그런데 정작 그 지구를 모른다. 나를 모르고 내 인생을 모르고 산다. 왜 나는 한국 사람일까? 왜 한국이 아닌 미국에 살고 있을까? 모르고 산다. 정말 미안하고 부끄러운 것이 아닐까? 길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그 길을 간 것의 차이를 아는 순간 우리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오늘은 내 생애에 처음 있는 날이다. 오늘은 어제도 내일도 아니다. 오늘이다. 오늘은 오늘뿐이다. 오늘을 살자!